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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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과 고통의 차이

2006-01-19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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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에 도착하면 첫 순간부터 가난을 목격한다. 국제공항을 벗어나와 차를 타고 가면서 도로변의 움막집들, 무거운 짐을 머리에 이고 아기를 업고 걸어가는 여인들, 다 떨어진 옷조차 입지 못한 아이들이 맨발로 바나나 밭에서 뛰어다니는 것을 보게 된다.
나중에 차에서 보았던 것과 같은 초라한 움막집들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전기도, 물도, 전화도 없는 가난한 사람들과 만나 대화를 나누며 그들의 삶을 좀 더 가까운 곳에서 보게 된다. 대부분 이들은 가난하지만 진정으로 행복하게 사는 것 같아 보인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가난’과 ‘고통’이 동일하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렇다면 가난한 많은 아프리카 사람들이 어떻게 그리 행복할 수 있단 말인가. 아프리카에서 돌아온 지난 한 주간 나는 두 가지를 깊이 생각하여 보았다.
첫째, 가난과 고통의 관계가 무엇인가? 둘째, 가난과 고통을 목격하면서 크리스천은 어떻게 반응하여야 할까? 다음이 나의 반응이다.
첫째, 가난과 고통이 동일할 때가 있다. 가난하기에 집이 없어 길거리에서 추위에 떨고 비에 젖어 고통을 당할 경우 가난과 고통은 동일하다. 식량 부족으로 배고픈 고통을 겪고 옷이 없어 추위의 고통을 당하면 가난과 고통은 동일하다. 병들었을 때 돈이 없어 기본적인 치료를 받지 못한다면 가난과 고통은 동일하다.
크리스천으로서 이처럼 가난한 사람들에게 음식을, 옷을, 집을, 약을 주어 고통을 덜어주는 것이 마땅한 도리이다.
둘째, 가난이 상대적이라면 고통은 절대적이다. 예를 들어 100년전 한국에서 초가집 한 채와 논 열 마지기, 소 두마리 가졌으면 부자였다. 그렇지만 그 사람이 현재 한국에서 똑같은 재산을 가지고 산다면 자신이 가난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가난의 기준이 세월이 지나면서 변하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치통 때문에 고통을 겪는 사람의 고통이나 100년전에 치통으로 고통을 겪었던 그 사람의 고통은 똑같다. 아픈 것은 아픈 것이다.
셋째, 내가 동부 아프리카에서 목격한 고통은 가난으로 인한 배고픔도 있었지만, 더 많은 고통은 미국에서 우리가 겪고 있는 것과 똑같은 인간적인 고통이었다. 예를 들어 가정불화, 소외당한 사람들의 고통, 강한 자가 약한 자를 이용하며 가하는 고통이었다.
넷째, 가난을 외부 사람의 구제로 퇴치하기 힘들다. 가난은 국가적이고 사회적인 문제이기에 체계적인 문제 해결이 필요하다. 자기 나라 국민이 나서서 길을 만들고, 학교를 짓고, 병원을 지으며 가난을 극복하여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좋은 정부를 설립하여야 한다. 미국사람들이 도와줄 수는 있지만, 아프리카 사람들이 자기들의 가난의 문제를 해결하여야 한다는 것이 대부분 미국사람들의 견해이다. 하지만 고통은 다르다. 고통을 당하고 있는 사람에게 개인의 도움의 손길이 필요하다. 사랑이 고통을 치유하는 방법이다. 그래서 사랑은 직접 개인이 개인에게 전달할 수 있다. 아프리카를 처음으로 여행하는 사람에게 나는 이렇게 충고한다.
“많은 사람들이 당신에게 다가와서 돈을 달라고 할 것이다. 하지만 ‘고통’과 ‘가난’을 분별하라고 당부하고 싶다. 당신의 제한된 물질을 고통을 덜어주는데 사용하라. 돈이 고통을 덜어줄 수도 있지만 항상 그렇지만은 않다. 그러나 사랑은 항상 고통을 덜어줄 수 있다. 당신의 사랑을 그들과 나누어라”


교육학 박사·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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