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심령 가난

2006-01-07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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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교인칼럼/이영철 목사(밴쿠버성결교회)

오늘 하루도
신문지의 냄새로 하루를 느껴
좋은 찬물맛에 여름을 느껴
바람에 흔들리는 풍경소리의 서늘한 기분에서 저녁을 느껴
개구리의 소리에 똑똑히 밤을 느껴
그래서 오늘 하루도 끝나는구나
하나에서 하나로
그 분의 은혜와 사랑을 느껴.
(미즈노겐죠‘오늘 하루도’ 전문)


시인 겐죠는 40대 후반의 얼굴에 몸은 10세도 채 안된 사람이다. 일어나려고 기형적인 큰 머리를 방바닥에 거꾸러대고, 수족은 바다의 문어발처럼 제각기 움직이고 있다. 그의 시는 그의 눈길이 가리키는 철자들을 모아 가족들이 대신하여 쓴다. 보기에도 안타까운 사람. 행복과 성공이란 단어는 아무리 생각해도 그와 무관해 보인다.
어떤 사람이 행복한 사람일까. 사람은 누구나 행복해지길 원한다 . 먼저 건강하고, 집세나 몰게지에 신경쓰지 않고 저축할 수 정도로 돈을 벌고, 자녀들이 원하는 대로 잘되어주고, 가정이 화목하고....물론 각자 주관적인 경우도 많다. 남들은 불행하게 보아도 자신은 행복한 경우가 얼마든지 있는 것처럼.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 행복이 눈 앞에 온 순간 곧 사라진다는 것이다. 아니면 행복에 익숙해진 나머지 더 이상 행복으로 느끼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행복이란 지극히 변덕꾸러기인지 모르겠다. 절대적 행복, 영원한 행복은 없는 것일까.
어떤 사람이 성공한 사람일까. 우선 돈과 권력을 거머진 사람을 떠올리게 된다. 사실 성공도 생각하기에 따라 얼마든지 다를 수 있다.
흔히들 성공과 행복에 가장 가까이 근접했다고 여기는 사람, 이 부자라는 사람들은 누구일까. 먼저 돈과 시간의 여유가 많은 사람을 떠올리게 된다. 그런데 돈만 많은 사람들의 경우 자세히 보면 돈의 노예로 지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자신에게는 후한 지출을 해도 이웃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인색하다. 마치 자신들은 선택된 사람이요 주류사회에서만 행세한다는 착각을 하고 산다. 한두끼의 식사로 생색은 낼지언정 결코 베품과 나눔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다. 이를 우리는 보통 C급 부자라 부르곤 한다.
이제 새해가 시작되고 있다. 이왕이면 누구나 행복하면 좋겠고 성공하면 기쁜 일이 아니겠는가.
참다운 행복의 비결은 무엇일까, 문호 괴테(Goethe.J.W)는 말했다. ‘쓸데 없이 후회하지 말것, 화내지 말 것, 남을 미워하지 말 것, 앞날을 앞당겨 걱정하지 말것’이라 했다.
진정한 성공은 무엇일까, 에머슨(Emerson. R.W)은 말했다. ‘자주 많이 웃을 것,현명한 사람들과 아이들에게 존경과 애정을 받는 것,친구의 배신을 참고 견디는 것, 다른 사람의 좋은 점을 발견하는 것’이라 말한다.
이들의 말로 볼때 사실 행복과 성공은 거창하고 화려한 것이 아닌 작고 소박한 것들이다. 우리는 사소하고 미미한 것에서 웃고 울며 삶의 여러가지 감정을 느끼는 존재들이다. 이 나라에서는 전인구의 1/10 이상이 자원봉사 활동을한다. 그리고 45% 이상이 각종 도네이션을 하고 지낸다. 자신의 꽉 짜인 일과중에서 자투리 시간을, 자신의 빠듯한 수입중에서 작은 액수라도 베풀고 나누는 사람들이다. 그들의 얼굴들을 보라. 입가에 순전한 미소가 있다. 행복의 미소인 것이다. 내 눈에는 그들의 미소에서 성공의 인생이 떠오른다. 착시 현상일까. 이들에게서 찡그리며 다투는 모습을 볼 수 없는 것은 그 마음 속에 베품과 나눔이 주는 사랑과 기쁨이 있기 때문이다.
천국이란 바로 이들의 것이 아닐까. 분명 천국, 거기에는 불행자도, 실패자도,가난한 자도 없을 것이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어 천국을 소유한다고 했다(마태5:3). 천국을 소유한 자들은 어떠한 처지일지라도 어떠한 환경일지라도 겐죠처럼 시간과 하루와 계절과... 나아가 모든 삶속에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행복하고 부유한 인생과 참된 믿음이란 바로 이 ‘심령 가난’(The Poor in Spirit)에서 출발함이 아닐까. 이 네 글자가 나에게 주는 의미를 위해 잠시라도 묵상하며 기도해 볼 일이다.
1년은 하루에서 하루로 이어져 365일이 된다. 이 하루도, 1월도, 새해도 세상 모두 누구에게나 똑같이 공급되는 시간들이다. 오, 이 거룩한 평등함이여! 이 시간을 어떻게 느끼고 어떠한 것으로 채우냐에 따라 그 인생의 모습은 달라지게 된다. 이제 그 새로운 각오를 되찾게 해주는 새해가 우리에게 밝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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