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을 때까지...

2005-12-09 (금)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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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80대 노부부의 사랑

▶ 거동불편 아내 2년7개월간 지극 정성 간호

난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여자예요. 당신이 너무 고맙고. 매일 보고싶어요, 하나님이 나를 부르실 때까지 언제까지나 당신과 함께 있을 꺼야. 부부는 일심동체잖아. 부부간의 깊은 사랑을 느낄 수 있는 이 대화는 코끝을 찡하게 하는 멜로 영화에 나오는 이야기도, 달콤한 꿈에 젖어있는 신혼 부부의 대화도 아니다. 2003년 다리를 다쳐 훼어먼트 너싱홈에 입원한 아내의 간호를 위해 하루도 빼놓지 않고 9백일 동안 너싱홈을 찾은 남편, 장수동(83)씨와 장경남(82)씨 부부의 이야기다.
80대 노부부의 아름다운 이야기는 62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과거 많은 사람들이 그랬듯 집안 어른들의 중매로 만난 이들은 장수동씨가 22살, 장경남씨가 21살 되던 1943년 8월 어느 여름날 백년가약을 맺었다. 1984년 미국으로 건너오기 전 장수동 할아버지는 직장 일에만 매달려 아내와 함께 보낸 시간이 없는 것이 후회된다며 과거를 회상했다. 장 할아버지는 젊었을 때는 정신 없이 일만했어. 지금 생각하면 미련하게 일만 했던 것 같아. 가족들이랑 함께 어디 변변한데 가보지도 못했지. 지금에서야 부인이 아프고 간호하면서 어찌나 그 시절이 후회되던지...라며 말끝을 흐렸다.
미국으로 이민 온 후 노부부는 장경남 할머니가 너싱홈에 입원하기 전에는 매일같이 공원에서 산책을 즐기거나 맥도날드에서 아침 식사를 먹으며 금실을 자랑했다. 이런 모습을 보고 주위에서 잉꼬부부라며 칭찬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공처가’라고 놀리는 사람도 있었다고. 공처가나 바보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그저 웃어 넘겼어. 남자가 여자를 항상 도와주고 사랑해 줘야지. 여자가 얼마나 힘든지 사람들은 잘 몰라. 한번은 부인에게 왜 여자로 태어나서 고생을 하느냐고 말했더니 ‘여자로 태어났으니 당신을 만났지’라고 대답하더라고 장 할아버지의 눈시울이 어느새 붉어졌다.
60여년 동안 모든 것을 함께 하며 행복한 시간을 보내던 중 2003년 장경남 할머니가 넘어져 두 다리가 부러지는 중상을 입었다. 두 다리에 철로 된 지지물을 삽입해 거동까지 불편해지자 장 할머니는 너싱홈에서 요양하게 됐다. 그후 근처 노인 아파트에 살고있던 장수동 할아버지의 일과는 매일 아침 6시에 너싱홈을 찾아 할머니를 간호한 뒤 오후 6시에 아파트로 돌아가는 것으로 바뀌었다. 아침 6시에 출근하면 (할머니를) 휠체어에 태워 운동시키고 식사시간에는 밥 먹여주고 그게 일과지 뭐 허허허. 장 할아버지의 너털웃음 속에서 할머니에 대한 사랑이 퍼져 나왔다.
장 할아버지의 극진한 할머니 사랑에 너싱홈에 있는 할머니들의 질투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훼어먼트 요양원의 이남희 스텝은 다른 할머니들이 너무 부러워 두분 모습을 보고 직원들에게 심술을 부리기도 한다며 오랫동안 너싱홈에서 근무했지만 매일같이 찾아오는 가족은 처음이라며 웃어 보였다.
장 할머니가 우유 마실 시간이 되자 할아버지는 우유를 가지고 화장실로 갔다. 뜨거운 물을 틀어놓고는 할머니가 마실 적당한 온도로 우유를 따뜻하게 하고 있었다. 따뜻하게 덥혀진 우유를 할머니에게 먹여주는 장 할아버지의 등뒤에는 할아버지가 걸어놓은 할머니의 젊은 시절 흑백사진이 액자에 걸려있었다.
너무 행복해. 남편이 조금이라도 늦으면 언제나 오려나 기다리고 남편 안 오면 밥도 안 넘어가. 항상 보고싶고... 젊은 할머니 얻어서 다른데 갈까봐 걱정 될 때도 있어.(웃음) 항상 고맙고, 감사하고. 나 아프기 전에도 영감한테 싫은 소리 들어본 적 한번도 없어. 내가 매일 기도하는 게 뭔지 알아? 우리 할아버지 나보다 오래 살게 해달라는 거. 영감 없으면 나 못사는데 먼저가면 안 되잖아... <황진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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