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울너럭/고려인은 아픈 우리 역사의 모습

2005-07-06 (수)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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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남표 <한국 전 장성>

고려인들의 사정을 접하고 가슴 한 곳이 아프기 시작 하면서부터 그들의 현실을 보기 위한 여행을 준비했다.
우리 내외는 5월 9일 이곳 시애틀을 떠나 서울 러시아 대사관에서 여러 가지 수속을 끝내고 5월 22일 연해주 아르좀 공항에 도착했다.
현대호텔(현대그룹 소유)에서 여장을 푼 다음날 일찍 숙소를 출발, 우스리크에 있는 크레모보 고려인 정착촌을 찾아가는데 도로는 비포장이요, 또 도중에 수 차례에 걸쳐 경찰들의 검색을 당해가며 3시 간 여 만에 도착할 수 있었다.
고려인들을 만나는 순간 우리 역사의 아픔을 다시금 실감했다. 그들의 현실은 생각보다 더욱 가슴이 아팠다. 그들에게 우리가 가지고 간 내의, 양말, 셔츠, 모기 약, 볼펜 등을 전달하고 고려인 가정에서 점심을 먹었다.
젊은 세대들과는 말이 통하지 않았고 70세 이상 된 노인으로부터 그들이 강제 이주 당한 당시의 이야기, 소수민족에게 학대받던 이야기, 그 곳에 LA목사가 세운 은혜교회에 나가 하나님 믿는 이야기 등을 들을 수 있었다. 오후에는 우스리스크 강변에 세워진 이상설 선생의 유허비를 답사했다.
비 문은 다음과 같았다.

-이상설 선생 유허비-

“보제 이상설 선생은 1870년 한국 충청북도 진천에서 탄생하여 1917년 연해주 우수리스크에서 서 거한 독립운동의 지도자이다.
1907년 7월에는 광무황제의 밀지를 받고 헤이그 만국 평화회의에 이준, 이위종을 대동하고 시행하여 한국독립을 주장하다 이어 연해주에서 성명회와 권업회를 조직하여 조국 독립 운동에 헌신 중 순국하다. 그 유언에 따라 화장하고 그 재를 이 곳 수이문 강물에 뿌리다.
광복회와 고려학술문화재단 은 2001년 10월 18일 러시아 정부의 협조를 얻어 이 비를 세우다.”라고 적혀 있었다.
불행했던 우리 역사의 현장에서 고려인을 만나는 순간 가슴부터 아프기 시작했다.
가까이 내려다보이는 블라디보스톡 항만에는 환히 불을 밝힌 많은 배들이 정박해 있고 그 옛 시절 우리 조상들이 조국을 찾겠노라 울부짖었을 피와 땀을 생각하며 불현듯 내 가슴이 미여옴을 느꼈다. 우리는 오늘 그 분들의 애국 애족함을 얼마나 기억하며 감사하고 있는가.
지금 살기 위해 고통 받고 있는 고려인들이 하루속히 자립해서 세계 속에 흩어져 있는 우리민족이 다 함께 잘사는 날이 오기를 기도했다. 블라디보스톡은 내 어머니의 고향이며 내가 세상의 빛을 본 그 곳, 내 아버지가 나라를 찾기 위해 독립운동을 하던 곳, 내 부모 와 동생이 강제로 이주 당한 그 슬픈 기차역과 철로를 바라보고 또 만져 보았다.
이제 세상 끝자락에 서있는 불행했던 우리의 역사와 더불어 내 수난의 인생 역정을 다시금 음미해본 뜻 있는 여행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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