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집 탐방 ‘오클랜드 종가집’
2005-06-15 (수)
첫선 보인 5년 전이나 5년 지난 지금이나
한국토속 맛과 멋 한결같이
팔도한정식 오클랜드 ‘종가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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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맛’이 없을 때 시간은 왜 이렇게 더디 가는지, ‘입맛’이 없을 때 끼니는 왜 이렇게 바삐 오는지. 요즘처럼 푹푹 찌는 계절이 되면 생각은 이렇게 시시각각 뒤죽박죽 갈피를 못잡기 일쑤다. 일하는 재미는 없어도 먹는 재미라도 있어야 하는데 얄궂은 ‘입맛’은 ‘일맛’이랑 짝짜꿍을 하고서 줄행랑을 놓은 뒤 도통 돌아올 낌새조차 보이지 않는다. 잠못 이루는 여름밤, 꿈자리인들 편했으랴. 늦잠 비슷한 얼치기잠을 가까스로 뿌리치고 아침일랑 먹는둥 마는둥 일터를 향하는 일이 다반사가 되면서 빈속은 차츰 버릇이 되어간다.
그런데 이 고얀 것들이 오클랜드 레이크 메리엇 북쪽 언저리 큰길가에서 5년을 하루같이 터잡아온 ‘종가집’(사장 오병옥, 372 Grand Ave., Oakland)에 가면 시쳇말로 ‘쪽’을 못쓴다.
쌈밥·해물전골·불낙전골·곱창전골·민어찜·은대구찜·아구찜·물냉면·칡냉면·회냉면·비빔냉면·샤부샤부·종가집 정식A·종가집 정식B….
이것 먹을까 저걸 고를까 휘둥그래진 눈을 굴리는 사이, 말라서 갈라진 침샘에는 어느덧 군침이 넘쳐흐르고 단단히 토라진 빈속이 벌떡 일어나 부산스럽게 보챈다. ‘입맛’은, 함께 도망친 ‘일맛’의 꼬드김을 들은 척 만 척 댓바람에 저 혼자 달려와, 마치 원래 그 자리를 지켰던 녀석처럼 염치도 없이 혀를 호령하고 눈을 지휘하고 코를 통솔하고 속을 정렬한다. 열무김치 한잎-. 그날 입맛 따라 호주머니 사정 따라 어렵사리 정한 메뉴를 기다리는 동안 찬물 한모금 들이킨 뒤 몸과 마음을 ‘먹거리 대형’으로 정비하라고 미리 내놓는 애퍼타이저인데, 매움새콤 그맛과 푸르불긋 그멋이 일품이다. 안주인 오경자 여사가 시집오기 전에는 친청어머니한테, 시집온 뒤로는 시어머니한테 배워서 손끝에 농익은 솜씨로 만든 것이다.
100가지 넘는 맛 100가지 넘는 음식
군침 살살 신토불이 밑바찬 수두룩
정작 본판은 그 다음부터다. 100가지 이상 먹거리들이 100가지 이상 맛을 뽐내며 선택을 어렵게 만든다. 샤부샤부라고 다 같은 샤부샤부가 아니다. 고기를 당기는 날에는 상추샤부를, 고기는 좀 사양하고픈 날에는 버섯샤부를, 스태미나 미용식이 생각나면 굴샤부를 고르면 제격이다. 냉면 종류를 꼽는 데도 손가락이 모자랄 정도다.
밑반찬도 푸짐하고 다양하다. 말린 무시레기나 말린 도라지 등속을 버무린 우거지, 북어나 멸치로 만든 조림, 오이짱아치 등등 풍부한 ‘종가집 대표선수 밑반찬들’이 라커룸에서 줄지어 서서 출격명령을 기다리고 있다.
뿐이랴. 종가집은 들어서는 기분부터 다르다. 개업 5주년을 갓 넘긴 이날 이때까지 ‘미국땅 한국맛’을 지키려고 부단히 노력해온 오씨 부부의 신념을 증언하듯 종가집의 장식 또한 ‘양식 속 한옥’이다. 기와집 분위기를 낸 대문 안으로 들어가 홀을 향해 방향을 틀면 태극문양 작은북이 걸려있고, 그 오른쪽 기둥에는 나무하러 간 나무꾼을 기다리듯 미니어처 바지게(바작과 지게)가 받혀져 있다. 그 언저리에 꽂힌 곰방대를 입에 물고 어디선가 금방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나타나실 것만 같다. 먹느라 정신이 팔린 손님들을 지켜보며 넉살좋은 웃고 있는 안동하회탈들은 또 어떤가.
오씨 부부와 여나믄 직원들이 정성스레 빚어내는 한국의 맛에 반해서, 그리고 안가봐도 가본 것 같은 한국의 멋에 반해서 이곳을 찾는 타커뮤니티 손님들이 많다. 열 가운데 네다섯은 그런 손님들이요, 개중에는 전혀 어색하지 않은 젓가랏질 솜씨에다 젓갈까지 찾는 등 ‘골수 코리안’ 뺨치는 타민족 손님들이 부지기수다. 2층 별실에서 노래방기계를 틀어놓고 생일파티 등 잔치잔치 벌이는 ‘외국인들’도 한둘이 아니다.
그렇다보니 종가집은 문 닫을 틈이 없다. 1년 열두달 쉬는 날이 없다.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는 오전 11시부터 오후 11시까지, 일요일에는 낮 12시부터 오후 11시까지 늘 문은 열려 있다. 전화 : 510-444-7658
<정태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