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울너럭/조화와 평화의 세상
2004-11-23 (화) 12:00:00
이현호 목사<한인감리교회>
우연찮게 한인합창단과 인연이 닿아 요즘 한 주에 이틀씩 공연 연습에 참여하고 있다. 단원 모두가 저마다의 바쁘고 힘겨운 일상에도 불구하고 참 진지하고 열심이다. 그래서 내게는 그들의 합창이 단순한 개인적 취미생활을 넘어서 값진 헌신처럼 보인다. 단순한 자기 만족을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이웃들의 삶에 기쁨을 선사하기 위한 노래하는 산타클로스들이다. 나는 ‘목회 한다’는 핑계로 그동안 연습에 열심히 참여하지 못한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다. 목소리도 갈라지고 곡을 완전히 익히지 못해서 늘 진땀을 흘리는 것이다. 헨델의 메시아(Messiah)를 부르면서 정말 메시아가 날 이 곤경에서 구원해주기를 학수고대하면서……. 하지만 지휘자의 넉넉한 용서의 은총과 함께 노래하는 이들의 너그러움 덕분에 아직까지 쫓겨나지 않고 살아남았다(!). 내 노래 실력이 비록 ‘진땀’ 수준이지만 그래도 안면 몰수하고 합창단에 끼어 노래하는 이유는 아주 단순하다. 즐겁기 때문이다. 진수성찬을 혼자 먹는 것보다 라면 한 그릇이라도 여럿이 어울려 먹는 것이 더 맛이 있는 것처럼, 노래도 혼자 부르는 것보다는 한데 어울려 부르는 것이 더 구수하고 맛깔스럽지 않은가.
합창은 참 맛있고 오묘하다. 왜냐하면, 합창의 생명이 ‘화음’(和音)에 있기 때문이다. 화음 즉 음의 조화를 이루는 일의 근본은 물론 ‘절제’와 ‘양보’이다. 남의 소리를 들으면서 내 소리를 절제하고, 홀로 두드러지기보다는 서로 어울릴 수 있는 소리를 내는 것이 합창의 생명이다. 말하자면 합창은 ‘홀로’가 아닌 ‘더불어’의 문화를 창조하며, 독불장군 개인주의 문화를 물리치고 공동체를 일궈간다. 이런 의미에서 합창을 한다는 것은 나에게 있어서는 참 유익한 인생훈련이요, 영성훈련(spiritual practice)이다.
남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 그리고 나 자신을 스스로 돌아보아 불필요한 것들이나 지나친 것들을 삼가는 것이야말로 전통적인 수신(修身)의 덕이며 또한 그리스도교 영성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열 사람이 함께 한 걸음을 내딛는 것보다는 홀로 열 걸음을 가는 것이 미덕이 되어버린 거친 세상에서, 남의 소리를 경청하기보다는 자신의 소리를 높이는 대화 상실―대화(dialogue)는 서로(dia) 얘기하는 것(logue), 즉 듣는 것과 말하는 것의 조화이다―의 사회에서 합창을 한다는 것은 그 자체가 거룩한 종교행위이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조건 없이 한데 어울려 깔끔하고 아름다운 화음을 만들어 낼 날은 언제일까! 절제와 양보로 화음을 엮어내는 노래 같은 삶, 조화의 디딤돌 위에 평화의 집을 지을 날을 우리 모두 염원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