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당주의 안 통하는 미국법
‘한 번 속지 두 번은 안 속는다’는 말이 있다. 우리들은 종종 ‘적당주의’를 험한 세상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방법이라고 간주한다. 예컨대 E2 비자를 취득하려면 꼭 정식 사업체가 있어야하며 규정된 고용인 숫자를 고용하고 임금도 정식으로 지불해야한다. 그런데 서류를 가짜로 꾸며서 이민국에 제출하다가 제대로 해도 비자가 나올 수 있는 케이스를 긁어 부스럼 만들기도 한다. 미국법이 허술한 것 같아 보여도 ‘길러서 잡아먹는’ 법인 것이다. 한번 세금 감사를 받으면 혼쭐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런 ‘적당주의’는 우리네의 역사와 무관하지 않다. 대한민국이 수립한 이후 2003년 말까지 55년간 미국으로 정식 이주한 한국인 수는 86만 명에 달한다. 미국 이민이 시작된 것은 구한말이었고 일제 시대에 중단되었다가 8.15 해방 후 재개되었지만 가난과 외화부족, 재정보증의 어려움 등으로 1960년대 초까지만 하더라도 소수의 유학생, 국제 결혼한 여성, 전쟁고아 등이 고작이었다.
그러다 1960년대 이후 경제 성장이 이룩되면서 매년 이민자 수가 급격히 증가하게 되었다. 즉, 1962년의 이민자수는 209명에 지나지 아니 하였지만, 그 뒤 계속 증가하여 1969년에는 7,373명, 1978년에는 3만5,592명으로 절정에 달했고, 1990년에는 1만4,268명이 이주하였다. 한국인의 미국 이주는 한미 두 나라의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여건에 따라 달라지게 마련이지만 인구 과잉국인 한국으로서는 이민 정책을 강행할 수밖에 없으므로 미 이민자수는 앞으로도 계속 증가할 전망이다. 이렇게 급증하는 미국 이민자의 대부분은 큰 도시에 모여 사는 경향이 있고, 그 결과로 이루어진 코리아 타운은 최근에 급성장, 주류 사회 주민들 앞에서는 국위를 선양하고 한인들에게는 고국의 따뜻한 정과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반면 문화적 배경의 차이 때문에 일어나는 법률적 문제도 많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적당히’라는 의식구조상의 오해가 어떻게 있을 수 있느냐가 문제인데, 이것은 공동체적 전통의 차이에 기인한다고 말 할 수 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농경사회에서는 촌락 공동체(village community)의 일원으로서 공동체 의식을 가지고 생활했었는데, 한국의 경우는 산업화가 된 오늘날까지도 ‘우리’의 개념아래 적당히 넘어가는 의식이 많이 남아 있다.
거기에는 자기가 속해있는 마을이나 종친 등 좁은 범위의 소집단 이기주의가 포함되어 있다. 그러면 어떻게 ‘적당주의’에서 벗어날 수 있을 까.
시간은 좀 걸리겠지만 우리는 이 소집단 이기주의의 범위를 넓혀야만 한다. 그리고 미국은 이 부분에 있어서 세계에서 가장 앞서 있어서 공동체적 의식구조가 아예 없었거나 오래전에 현대화됐고 철저하게 합리적이고 합법적이라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미국에서 ‘적당히’라는 말이 통하지 않음은 바로 공동체적 의식구조의 현대화 때문인 것이다. (714)901-4545
박재홍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