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울너럭/더불어 함께 하는 사회

2004-10-05 (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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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림 장로교회 목영수 목사

몇 일 전 필리핀 선교여행을 마치고 한국에 잠시 머무는 동안 나라 전체가 어렵고도 힘들어하는 어두운 이야기들을 많이 들었다. 그런 상황에서 사람들의 마음에 감동을 준 밝고 아름다운 이야기가 있어서 여행의 피곤을 조금이나마 씻어 주었다.
대한전선 설원량 회장의 유족들이 국가에 상속세로 자진 납부하겠다고 신고한 금액이 1355억이라는 것이다. 나는 솔직히 이 금액이 얼마나 큰 금액인지 모른다.
하지만 내가 기억하고 있는 것이 있는데 ‘한국 최고의 재벌 유족이 자진 납부한 상속세 70억이다’라는 것과는 비교할 수 있다.
한국의 모든 기업들이 성장에만 마음을 쏟았지 분배에는 인색한 것이 한국의 기업 풍토라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성장과 분배가 균형을 이루지 못하고 있는 현실 속에서 1355억의 자진납부는(지극히 당연한 일이지만) 한국의 어두운 현실을 생각해 보면 신선함을 준다.

성장과 분배, 나눔과 공유는 더불어 함께 하는 사회를 만들어 가는 근본이다. 어두운 이야기들로 덮여 있는 땅에 한줄기 밝은 빛이 비추인 것 같다. 이런 분들이 존재하기에 한국이 그래도 버텨가고 있구나 생각했다.
또 하나 아름다운 이야기가 있다. 한국의 종합대학과 종합병원들이 그 높고 길게 쌓은 담을 헐고, 그곳에 나무를 심고, 잔디를 심고, 벤치를 만들어 이웃에게 휴식공간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동네 가족들이 저녁에 와서 휴식을 취하고, 낮에는 직장인들이 점심 후에 잠시 쉬어 이야기하고, 회사 내에서 마셨던 커피도 그곳에서 한잔하고 갈 수 있는 직장인들의 휴식 공간으로도 사용되고, 연인들의 만남의 장소로도 사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참으로 깊은 샘물에서 끌어올린 시원한 물을 마시는 것 같이 상쾌하다. 갈수록 단절되어 가는 인간관계, 이웃과 이웃과의 막혀있는 담을 헐고 더불어 함께 하는 투명한 사회를 예측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 담을 없애니 문제도 많단다. 쓰레기를 갖다 버리는 얌체들, 도둑들이 설치는 등, 등, 어디나 불청객들은 있게 마련인가 보다.
내가 선교 지에 가기 한달 전 밤에 우리교회에 도(盜)선생이 찾아와서 여러 가지 물건들을 훔쳐 갔다.


더욱이 저번에 못 다 가져간 것이 있는지 도선생(?)이 또 다녀갔다고 한다.
한국의 대학이, 병원이 담을 헐고 이웃과 더불어 하는 모습에 감동하고 돌아왔는데 도선생을 막기 위해서 담(Fence)을 쳐야 한다는 것이다. 있는 담도 헐고 있는데 없던 담을 쌓아야 한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내키지 않는다. 담을 쌓을지, 안 쌓을지? 나는 잘 모르지만, 그러나 분명한 것은 설령 보이는 담을 세운다 하더라도 보이지 않는 마음의 담은 이웃과 쌓여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마음의 담을 헐어버리고 이웃과 함께 하는 교회와 사회를 소망하면서 ‘더불어 함께’라는 단어는 생각만 해도 기분 좋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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