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울너럭/의미와 재미
2004-08-25 (수) 12:00:00
새크라멘토 한인감리교회 이현호 목사
<어떤 두 사람이 함께 기차여행을 하게 되었다. 긴 시간 동안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 열심히 얘기를 나누던 두 사람, 너무 진지해진 나머지 인생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서로의 생각을 나누기에 이르렀다. 한참을 생각하고 아무리 얘기를 나눠도 딱히 ‘인생은 이런 것!’이라고 말하기가 참 어려웠다. 하지만 그들은 ‘인생’에 대한 고민을 늦추지 않았다. ‘과연 인생이란 어떤 것일까?’ ‘도대체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아, 삶이란 무엇이란 말인가?’ 그들의 고민은 깊어만 갔다. 그때 기차 안에서 여러 가지 물건을 판매하는 아저씨가 두 사람이 앉아있던 자리를 지나가면서 외치는 소리, 삶은 계라안∼ 순간, 두 사람의 뇌리를 스치는 생각, ‘아, 삶(인생)은 계란과 같은 것을!>
한번 듣고 웃어줄 만한 이 이야기는 우리에게 인생을 헤쳐 나가는데 요긴한 지혜를 하나 던져주기에 충분하다. 삶은 계란! 인생이란 것이 그 표면에 머물러 있으면 마치 계란의 껍질처럼 무미건조하지만, 그 깊은 내면으로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맛깔스럽다는 말이다. 인생의 표면에 머물러 있다는 말은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어떻게 살아야하는지를 고민하지 않고 단지 순간적인 재미만을 추구하며 산다는 뜻이다. 그 말은 또한 무엇이 올바른 삶인가를 묻지 않고 무엇이 내게 이익이 되는가만 따지며 산다는 뜻이다. 실로 우리는 ‘의미’가 ‘재미’에 의해 추방당하고, 정의로운 삶이 이해타산의 주판알에 의해 퇴출당한 시대에 살고 있다는 느낌을 떨쳐버릴 수 없다. 무엇이 바람직한 삶인지를 묻는 물음은 이미 희미한 옛 사랑의 그림자, 구시대의 유물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과연 ‘생의 의미 물음’이 철학자들이나 종교인들만의 따분한 유희(遊戱)에 불과한 것이고, 빠르게 변화하는 현대를 살아가는 바쁜 사람들에게는 한갓 사치스런 놀음에 불과한 것인지 우리는 다시 따져봐야 한다. 첨단 자본주의 세상은 갈수록 재미있는 오락들로 넘쳐나지만 갈수록 상대적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불면증과 자살 충동 등 다양한 정신병적 증상을 호소하고 있다는 것은 우리 시대가 연출하는 하나의 블랙 코미디(Black Comedy)가 아닐 수 없다. 재미있게 살고 행복하게 살려고 바쁘게 움직이지만 너무 바쁜 나머지 행복할 짬도 없고 재미를 느낄 여유조차 없는 것이 똑똑한(?) 현대인들이 창조해내는 삶이다.
정작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기발한 오락 프로그램이나 더 많은 유흥비가 아니다. 우리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정말 ‘잘!’ 살고 있는지를 되짚어 볼 수 있는 10분간의 여유가 필요한 것이다. 물음표(?)가 없으면 느낌표(!)도 없다. 계란의 껍질을 깨지 않는 자는 노른자의 맛을 모른다. 인생이란 이름의 바다의 표면에서 배회하는 사람은 그 심연(深淵)의 신비로운 아름다움에 심취할 수 없다. 의미와 재미, 그 어느 쪽을 택할 것인가는 이제 당신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