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콘크릭 와이너리(Conn Creek)

2004-07-21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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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이 맛, 나만의 맛을…

블렌딩 세미나

여러 종류 포도주 맛 본후 자기 원하는대로 섞어
병 마개 끼워 자신의 레이블 붙여 6개월후 비교

나파를 여행하면서 가장 유익하고 즐거웠던 시간을 보낸 곳 중 하나가 콘크릭 와이너리였다. 세인트 헬레나 지역 실버라도 트레일 선상에 위치한 콘크릭은 겉으로 보기에 눈에 띄게 화려한 곳도 아니고 와이너리 자체가 그리 커 보이지도 않는다. 깔끔하고도 단정한 외관과 작지만 품위 있어 보이는 테이스팅 룸에서 어딘가 모르게 고급스러운 분위기가 느껴지는 곳이다.
그렇지만 콘크릭이라는 이름이 귀에 생소한 사람들도 콘크릭의 적포도주 메리티지 ‘앤솔로지(Anthology)’는 한번쯤 들어보았을 것이다. 콘크릭은 보르도 스타일 적포도주를 만드는데 사용되는 카버네 소비뇽, 멜로, 카버네 프랑, 프티 베르도, 말벡의 품질이 우수하기로 이름난 곳이고, 때문에 이들을 적절히 섞어서 최고의 메리티지를 만들어내는 블렌딩 기술 또한 뛰어난 곳이기도 하다.
일반 관광객들에게는 허락되지 않지만, 콘크릭에서는 언론을 포함한 업계 사람들을 위해서 ‘블렌딩 세미나’(Blending Seminar)를 제공하고 있다. 여러 종류의 포도주를 자기 원하는 대로 섞어 자신만의 와인을 만들어보는 세미나이다.
아름다운 정원을 향해 유리문을 활짝 열 수 있는 블렌딩 룸에는 한 가운데에 커다란 케이블이 놓여있고, 양쪽 벽면을 따라 각기 다른 포도밭에서 재배된 포도로 빚은 포도주들이 담긴 오크통들이 좍 늘어서 있다.
우선 세미나에 참가한 사람은 베이스터(터키 구울 때 국물을 빨아들여서 다시 끼얹을 때 사용하는 도구)를 사용해서 오크통 뚜껑을 열고 하나씩 포도주의 맛을 본다. 우리는 먼저 카버네 프랑부터 시작했는데, 각기 다른 세군데 포도밭에서 생산된 세가지 카버네 프랑을 맛보았고, 그런 식으로 세가지의 멜로, 다섯 가지의 카버네 소비뇽, 두가지 프티 베르도, 두가지 말벡을 맛보았다. 세미나 룸에는 전체 20여개의 오크통이 있었으니, 모두 다 맛을 보지도 못한 것이다.
블렌딩을 잘 하려면 그렇게 많은 와인을 맛보고, 맛을 기억해야 한다. 같은 품종끼리 비교했을 때, 더 과일향이 강하다거나, 태닌이 강하다거나, 좀 싱겁게 느껴진다거나 하는 것을 기억하는 것이다.
와인들을 다 맛 본 후에는 새 잔을 들고 맛을 기억해서 그 잔 속에 와인을 섞는 작업을 한다. 너무 진하고 강하고 달착지근하게 느껴질 때는 좀 싱거운 와인을 섞어서 밸런스를 맞추고, 부드러운 와인을 원하면 멜로를 더 많이 첨가하고, 풀(full)한 느낌을 원하면 카버네 프랑을 첨가하고, 태닌이 너무 강하다 싶으면 말벡을 조금 섞는 식이다. 이 때, 각 와인의 블렌딩 비율을 정확히 재는 게 중요한데, 베이스터를 사용해서 적당히 눈대중으로 섞기 때문에 전문가처럼 아주 정확하게 비율을 알아내기는 힘들다.
각자 자신이 원하는 맛의 와인을 블렌딩 하기 전에 콘크릭에서는 자신들의 최고 블렌드인 ‘앤솔로지’를 오크통에서 직접 맛볼 수 있게 해 준다. 바로 이 맛이야, 싶은 정말 맛있고 밸런스가 훌륭한 블렌드이다. 때문에 내 잔에 블렌딩해서 만드는 와인도 ‘앤솔로지’를 목표로 하게 된다. 와인 잔에 블렌드한 와인의 맛이 마음에 들면, 그 다음에는 와이너리 측에서 제공하는 빈 병 속에 똑같은 비율로 와인을 다시 블렌드 하고, 그 자리에서 코르크 마개를 끼운 후, 자신이 직접 그린 레이블을 붙이면 나만의 블렌드가 완성되는 것이다. 6개월 후에 마셔보고 서로 맛을 비교해 보라고 권하는데, 과연 6개월 후에 내가 만든 블렌드가 어떤 맛으로 다시 태어날 지 생각만 해도 벌써부터 흥분이 된다.
와인을 블렌딩 하면서 제일 신기한 점은 두 가지 와인을 섞었을 때 어느 한 쪽에서도 맡을 수 없었던 향이 새로 생긴다거나, 두 와인의 맛과 향이 전혀 다르게 변해 버린다거나 한다는 점이다. 마치 두 사람이 만났을 때 상호작용을 통해서 자기 속에 있었는지도 몰랐던 장점을 서로 끄집어내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겠다.

<최선명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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