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파렌하이트 9/11’의 역할

2004-07-03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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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렌하이트 9/11’은 개봉한 이래 리버럴한 지역뿐 아니라 군기지 인근에서도 히트를 쳤다. 이 영화가 부시 대통령 정책의 피해자인 근로자 계층으로부터 뜨거운 호응을 얻고 있다는 사실은 마이클 모어와 거리를 두려는 리버럴을 포함, 이 영화 비판자들이 새겨 봐야 할 대목이다.
비판자들은 이 영화가 연상기법을 사용, 거짓 인상을 준다고 주장한다. 그런 사람일수록 부시 행정부의 이라크 전과 9/11에 대한 연상 기법 사용에 대해서는 말이 없다. 일개 영화감독이 대통령보다 더 엄격한 잣대로 재단돼야 하는가.

모든 결점에도 불구하고 ‘파렌하이트 9/11’은 중요한 공적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증명되지 않은 음모론을 거론하지 않았더라면 더 좋았겠지만 그것이 부시를 미워하지 않는 수백만 미국인들이 이 영화를 보려 몰려드는 까닭은 아니다. 이들은 다른 데서 듣지 못한 사실을 보러 오는 것이다. 모어는 존경받을 만한 인물은 아닐지 몰라도 존경받을 만한 언론이 제 역할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 영화가 히트를 친 것이다.
예를 들면 이 영화 관객은 첫 비행기가 월드트레이드 센터를 공격한 후 7분 동안 부시가 아이들과 ‘내 애완동물 염소‘를 읽고 있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는다. 그 날 부시가 용감하고 결단성 있게 행동했다는 주장이 거짓이었음이 드러난 것이다.
모어의 가장 큰 장점은 서민들과 교감이다. 그는 군 이외에는 탈출구가 없는 저소득층 청소년을 상대로 모병활동을 펴는 해병대원들의 모습과 이라크전으로 큰돈을 벌게 된 기업가들의 모습을 대비시킨다. 관객들은 이 영화를 보고 몇 가지는 사실이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미국 민주주의의 위기가 사라진 후에는 나도 그를 욕하겠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파렌하이트 9/11’은 결점이 있는 선전물이지만 9/11의 비극을 정치적으로 이용한 지도자들에 대한 진실을 말하고 있다.

폴 크루그먼/뉴욕타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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