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악덕업주의 죄와 벌

2004-06-15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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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좌의정, 우의정을 지낸 이사관이란 인물은 남달리 남 돕는 일에 주저함이 없었다. 장원에 급제해 관리로서 일취월장하던 그가 충청도관찰사로 부임했을 때였다.
어느 추운 겨울날 민정시찰 차원에서 고을을 두루 다니다 한 시골 선비의 어린 딸이 등에 업혀 추위에 벌벌 떠는 모습을 보았다. 생면부지의 어린아이가 고통스러워하는 것을 보다 못한 이사관은 자신의 겉옷을 벗어 그 아이를 감싸주었다.
강산이 한 번 바뀌고도 몇 해가 흘렀다. 당시 영조의 황후가 세상을 떠나면서 새로운 왕비로 시골 처자가 간택됐다. 이 처자가 바로 이사관의 겉옷 때문에 추위를 견딘 여아였다. 영조는 새 왕비에게 과거 추억을 물었고, 왕비는 ‘얼어죽을 뻔한’ 얘기를 했다. 이사관은 왕비와의 오래 전 인연으로 인해 중용 되는 은덕을 입었다고 한다.
아무런 이해관계가 없는 사람에게 ‘되’로 퍼준 사랑이 ‘가마니’로 되돌아 온 것이다. 얄팍한 이해득실로 맺어지고 끊어지는 게 일반적인 인간관계라 이 일화가 더욱 가슴을 파고든다. 순수한 사랑의 모델로 제시되는 선한 사마리아 사람에 대한 일화도 같은 맥락이다.
이처럼 자신에게 아무런 대가를 지불하지 않을 것 같은 사람에게 도움을 주는 것은 아름다움의 정점이다. 반면 자신에게 아무런 불이익을 주지 않는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는 것은 극악무도함의 극치이다. 후안무치한 이들에겐 ‘되’만큼의 악행이라도 ‘가마니 처벌’로 화답해야 한다.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먹는 음식에 쓰레기 등 먹어선 안 될 것들을 넣은 악덕 식품업자들은 돈에 눈 먼 인간 쓰레기들이다. 직접 납품했거나, 중간 거래에 간여했거나, 마지막 소비자에게 판매했거나, 조금이라도 잘못이 있다면 가차없이 죄를 물어야 한다. 쓰레기는 대충 덮어두거나 일부만 치워선 안 된다. 완전히 제거하고 냄새까지 말끔히 없애야 한다.
“악한 자와 대적하지 말고 원수를 사랑하라”는 성경말씀도 이들 악덕업자에겐 예외로 하고 싶다. 보복이 아니라 사랑으로써만 온전한 치유가 가능하다는 예수의 가르침에 감복한 간디의 비폭력 무저항 정신도, 이들 악덕업자들에겐 적용하고 싶지 않다.
“당신을 적대시하는 사람들에게 맞서되 적대감을 가져서는 안 된다”는 코란의 구절대로 극단주의를 삼가고 절제된 징벌에 만족하기엔 악덕업자들의 행동이 너무도 비인간적이다. 불특정 다수의 입맛과 건강을 담보로 치부한 이들 업자들과의 화해는 있을 수 없다. 법이 정한 처벌로는 미흡하다.
발암물질이 든 공업용 색소로 때깔을 낸 고춧가루를 판 업자, 공업용 소금으로 젓갈을 만든 업자, 횟감용 생선을 공업용 이산화염소로 소독한 업자에겐 그들이 하루 세끼 먹는 음식에 모두 이 고춧가루, 소금, 이산화염소를 듬뿍 뿌려서 먹게 한다.
광견병 걸린 개를 잡아 보신탕으로 팔아 짭짤한 수익을 올린 업자에겐 광견병 개들만 골라 평생 무료 보신탕을 공급한다. 공업용 시약을 첨가해 차를 만들어 마치 고혈압 노화방지 등 허위 선전을 한 업주에겐 이 시약으로 만든 차를 죽는 날까지 마시도록 해야 한다.
이곳 한인업소들이 “한국에서 온 물건을 팔았을 뿐”이라고 한다고 해서 비난에서 전적으로 자유롭다고 할 수는 없다. 원산지가 어디든, 무게를 늘이기 위해 사료, 납덩이, 볼트 등이 들어간 생선이나 꽃게 등이 그대로 판매된다면 이곳 업소들도 도마 위에 오르게 된다.
납품 받은 물건에 하자가 있는지 없는지 꼼꼼히 조사하는 게 식품상의 기본이다. 물건 팔아 수익만 챙길 게 아니라 이상이 있으면 반드시 바로 잡는 게 상도의이다. 수를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식품의 불량 여부는 물론, 유효기간 표시가 의무화되지 않은 냉동·냉장 식품의 진짜 유효기간에 의문점이 한둘이 아니다.
불특정 다수에게 해를 가하는 것은 결코 용서받지 못할 짓이다. 1차 책임은 원산지나 제조업체에 있겠지만 한인업소들도 촉각을 곤두세워야 할 것이다. 판매자보다는 소비자 입장에서 부정식품 발본색원에 앞장서주길 바란다.

박 봉 현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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