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울너럭/ 5월과 6월이 오면-허승화 교수

2004-06-01 (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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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서부를 떠나 새크라멘토에 정착한지 어언 일년이 가까워오는가 보다.
이제, 공항부근의 조용한 곳에 자리를 잡고 나름대로의 정원도 가꾸고 조그마한 채소밭도 가꾸는 여유를 찾게되었다. 많은 시간을 들이고 우리의 땀으로 만들어진 정원이기 때문인지 시간만 나면 정원에 나가 물도 주고 여러 꽃과 대화를 하는 것이 낙이 되었다.
빨갛고 분홍색인 두 그루의 동백나무에는 지난 3월부터 봉우리를 터트리더니 4월에는 탐스럽게 핀 꽃들이 ‘나’를 보아달라고 아우성 치듯 우리를 향해 활짝 웃고 있었다. 패리오 문을 열면 만발해 있는 형형색색의 꽃들이 나의 눈을 사로잡고 있다.

이렇게 자연의 신비와 아름다움을 만끽하면서 조용히 패리오 의자에 앉아 있노라면 나의 마음은 세속에 물들어 있던 탐욕과 성냄을 모두 벗어버리고 나도 모르게 넓은 바다와 가을의 하늘처럼 고요하고 평온한 최면에 걸려 있다.
클래식 음악을 즐겨들으면서 마음을 달래고 그 멜로디 흐름에 젖어 있노라면 고요와 평화를 느꼈듯이 자연이 주는 아름다움은 세속에 시달려 있는 인간의 육체적, 정신적 피로와 분노를 씻어 버리게 하는 특수 진정제이며 자장가이다.

또 꽃이 품고 있는 그 정교한 아름다움은 우리의 마음을 너그럽게 해주고 솜털같이 부드럽게 해준다.
꽃과 나와의 관계는 가장 순수하고 허심탄회한 관계이다. 그 관계는 인종을 초월하고 언어의 장벽과 이질적 문화의 장벽도 초월한 순수한 너와 나와의 대화에서 얻어진 관계이다.
이 특별한 관계를 맺어주는 우리 둘만의 대화는 비록 비 언어적이나 나의 감각 기관인 눈과 코를 통하여 수많은 대화를 주고받는 깨끗한 상호적 연결이다.

나는 자연의 섭리를 우리의 삶에 비교하면서 음미도하고 짤막한 지식이나마 대학에서 배우고 가르쳤던 상아탑의 진리를 대 자연 속에서 되새겨 보기도 한다.
우리정원의 많은 꽃들이 때와 시간에 맞춰 그 아름다움을 보여주었듯이 우리 삶에도 기다림과 인내가 필요하고 마음을 열고 생을 보는 시각도 필요하리라.
이것이 우주의 가르침일 것이다. 분수에서 나오는 물소리를 들으면서 마치 깊은 계곡에서 흐르는 물줄기의 자장가를 듣고 있는 듯 나의 마음은 텅 비어 있고 말없이 멍하게 꽃들만 바라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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