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컬럼 세상사는 이야기
2004-05-08 (토) 12:00:00
감사의 계절
살아있는 모든 것이 변신하려 기를 쓰는 봄날, 우리 부부도 도돌이표 일상에 쉼표를 찍어두고 며칠간의 일탈을 감행했다.
마침 캐나다의 밴쿠버에 사는 지인으로부터 다녀가라는 요청이 여러 차례 있던 참이어서 옷가지 몇 개 챙겨 넣은 가방 하나 달랑 들고 길을 떠났다.
익숙한 것들로부터 떠난 곳에서 낯선 것들과 눈맞출 때의 신선함, 슬며시 다가오는 불투명한 불안감 그리고 그 불안함 마저 이내 사랑스러워지는 벅찬 설렘을 여정의 순간 순간마다 만끽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돌아오는 기내에서 구름 아래로 낯선 풍경들이 지나가고 LA 공항이 아득하니 멀리서 나른한 한낮의 얼굴을 점차 드러내고 있었을 때, 우리 부부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Well come home!”을 외치며 감사의 눈빛을 서로에게 건넸던 것이다. 돌아온다는 것은 늘 안도감이 들게 한다. 돌아와 안길 수 있는 둥지가 있다는 건 얼마나 든든한 일인지.
떠나온 미지의 길 위에서 우리는 돌아갈 길을 내내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다. 카필라노(Capilano)에 있는 거대한 연어 부화장에 들렀을 때, 알에서 성숙한 물고기가 되어 바다로 나갔다가 지금 내가 바라보고 있는 저 물살을 헤치며 고향을 향해 힘차게 뛰어오를 연어들의 모습을 상상할 그 때부터였을까. 100년 동안 가꿔져 왔던 The Butchart Gardens에서 눈이 시리게 아름답던 꽃들의 향연에 마음을 빼앗기고 있는 동안에 불쑥불쑥 집에 계신 어머님의 얼굴이 꽃들 속에서 피어나고 있었을 때였는지도 모르겠다. 유난히 꽃과 나무를 사랑하는 분이 아니던가.
환희의 순간에도 생각할 겨를 없이 튀어나오곤 했던 알알한 그리움과 허전함의 정체를 나는 집으로 향하는 차 속에서 알아낼 수 있었다. 전화선을 타고 들려오는 어머님의 음성을 들을 때 마음이 사르르 녹으며 비로소 아, 우리가 집에 돌아왔구나, 하고 다시금 깨달았다.
봄을 타시는지 입맛도 없고 허리도 좋지 않아 기운이 없으실 터인데도 돌아올 아들내외를 위해 새로 지은 고슬고슬한 밥과 칼칼한 매운탕을 끓이며 함박웃음으로 맞아주실 어머님이 계셨구나. 전·후 사정이야 어찌 되었건 우리끼리만 떠난 여행이라 어머님과 함께 좋은 순간 순간들을 나눌 수 없었기에 내내 허전함이 있었구나.
이제는 먼 여정 중에도 좋은 것, 맛난 걸 먹을 때마다 어머님의 얼굴이 떠오른다. 그럴 때마다 어머님과 함께 살아 온 세월이 헛된 것이 아니었구나 싶다. 낳아주고 길러주신 부모님 못지 않게 소중한 분임을 다시금 일깨워 준 이번 여행이 새삼 고맙게 여겨진다.
우리 속담에 ‘내리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없다’ 는 말이 있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만큼 자식이 그 사랑에 보답하기란 쉽지 않음을 강조한 말일 것이다. 치사랑이란 한자의 ‘효’를 뜻하는 말이라고 한다. 효는 남을 위하는 마음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아끼고 소중히 하는 마음에서 시작되는 것이며 자기 자신이 소중하고 아름답다면 그 생명을 주신 부모님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은 당연하고, 그렇기에 그들을 공경하고 사랑하는 마음이 생기는 것이다, 라는 걸 누군가 내게 말해 준 적이 있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참고 견디며 자식들이 잘되길 바라는 부모님의 사랑을 받기만 하고 보답하지 못한다면 우리 삶이나 사회는 점점 정상 궤도를 이탈하게 될 것이다.
가끔 궤도를 벗어나 이탈하고 싶기도 하고 변화를 시도하기도 하겠지만 우리에겐 돌아갈, 돌아가서 뜨겁게 안아드릴 소중한 분들이 있음을 기억해야겠다.
눈부시도록 아름다운 이 계절, 생명 있는 모든 것들에 감사하고 사랑하고 싶은 마음이 우러나오는 이 계절에, 더 늦기 전에 감사의 마음 담은 소박한 편지 한 장 써서 띄워보는 것도 가슴 뿌듯해지는 일이 아닐까.
성영라<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