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자꾸 마시다보면 맛 저절로… 와인 맛의 표현

2004-05-05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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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이-단맛 없어 크리스프-신맛
오키-강한 오크향 태닌-떫은 맛


‘드라이(dry)하다’
‘크리스프(crisp)하다’
‘오키(oaky)하다’
‘태닉(tannic)하다’

와인은 알수록 더 많이 즐길 수 있다. 처음 와인을 마시기 시작하면서는 ‘시금털털하다’라던가 ‘쓰다’ 정도로밖에는 표현할 수 없었던 와인을 자꾸 마시다 보면 훨씬 더 자세하고 세련되게 그 맛을 구분할 수가 있게 되는데, 이를 설명하려면 와인의 맛을 표현할 때 사용하는 단어들을 알아야만 한다. 영어로는 주로 ‘드라이(dry)하다’ ‘크리스프(crisp)하다’ ‘오키(oaky)하다’ ‘태닉(tannic)하다’ 등의 표현을 사용한다.
와인에서 드라이하다는 표현은 ‘달콤한(sweet)’의 반대말로 쓰인다. 단 맛이 덜 느껴질 수록 더 드라이한 와인인 것이다. 그러나 샴페인에 있어서만은 ‘드라이’ 혹은 불어로 ‘섹(sec)’이라는 단어는 약간 달콤한 샴페인을 칭한다. 샴페인을 제외하고는 포도 속에 포함된 당분이 이스트와 모두 발효하여 알콜로 변한 상태를 ‘드라이’하다고 한다.
약간 달콤하게 느껴지는 와인(off-dry wine) 중에는 미국에서 많이 생산되는 화이트 진판델과 독일산 리즐링 캐비닛이 있고, 중간 정도의 당도를 지닌 와인(medium sweet wine)으로는 이탈리아산 모스카토 다스티와 독일산 슈펫레제 혹은 아우스레제가 있고, 매우 단 와인(very sweet wine)으로는 포트와 소테른이 있다.
크리스프(crisp)하다는 표현은 신맛의 조화를 설명할 때 사용하는 단어이다. 우리말로 바꾸자면 ‘아삭아삭한’ 혹은 ‘신선한’이라는 뜻이어서 와인과 관계가 없게 느껴질 수 있지만, 영어로 와인의 맛을 설명할 때 가장 많이 사용되는 표현 중 하나이다. 신맛이 많이 느껴질수록, 찡하고 짜릿하고 새콤한 맛이 크리스프한 맛이다. 신맛은 와인에 있어서 특별히 중요한 부분이다. 왜냐하면 와인을 음식과 함께 즐길 때, 음식의 맛을 좋게 해주고 입맛을 돋우어 주는 성분이 바로 신맛이기 때문이다.
와인의 신맛은 포도 품종에 따라 차이가 난다. 보통 백포도주가 적포도주 품종보다 산도가 높고, 백포도주 중에서도 리즐링과 소비뇽 블랑이 샤도네보다 산도가 높다. 또한 추운 기온에서 자란 포도의 산도가 일조량이 높고 더운 곳에서 자란 포도보다 높다.
보통 산도가 높아서 크리스프하게 느껴지는 와인은 입에 침이 더 많이 고이게 하고 톡 쏘는 자극적인 맛을 느끼게 하며, 산도가 낮아서 크리스프하게 느껴지지 않는 와인은 입안에서 부드럽고 풍만하게 느껴지는 와인을 말한다. 오키(oaky)하다는 표현은 오크통의 향을 많이 맡을 수 있을 때 사용하는 표현이다. 오크나무 향은 와인의 향, 맛, 바디 그리고 경우에 따라서 색을 더해 준다.
그렇지만 오크향이 강한 와인을 좋아하는가, 덜한 와인을 좋아하는가는 전적으로 개인적인 취향이다. 앞에 설명한 단맛과 신맛은 포도에서 비롯되지만, 오크향 만큼은 와인메이커에 의해 첨가된다. 오크통에서 발효시킬 때 오크향이 첨가되기도 하고, 오크통에서 숙성시키는 동안 오크향이 첨가된다. 현대에 와서 발효는 대부분 스텐레스 스틸 통에서 행해지고 있으며, 숙성시키는 오크통은 생산되는 나라에 따라 그 향이 다른데, 프랑스산 오크통을 최고로 친다.
오크향이 첨가되면 와인의 색이 무색에서 약간 노란색으로 변하고, 향이 강해지며, 맛이 풍부해지고, 입안에 꽉 차는 풍만한 느낌을 준다.
오크통에 발효할 때, 발효 기간, 오크통의 크기, 오크통의 나이, 오크통이 그을린 정도에 따라 오크향이 차이가 나게 된다. 오크통은 와이너리 입장에서 보면 가장 돈이 많이 드는 부분이므로, 값싼 와인을 만들 때는 오래 사용해서 쓸모가 없어진 오크통을 잘게 부순 후 스텐레스 스틸 탱크 속에서 숙성되고 있는 와인 속에 오크 조각을 넣기도 한다.
태닌(tannin)은 떫은 맛을 표현할 때 사용하는 단어로 떫은 맛이 강할 때 태닉하다고 표현한다. 태닌이 낮을수록 와인이 부드럽게 느껴지고 태닌이 높을수록 혀가 바짝 마른 것과 같은 느낌을 받는다.
태닌은 포도 품종에 따라 함량이 다르다. 껍질이 두꺼운 카버네 소비뇽은 껍질이 얇은 피노누아보다 태닌 함량이 훨씬 높다. 보통 와인의 색이 진할수록 태닉하다. 와인이 오랜 시간 숙성될수록 부드럽게 느껴지는데, 이는 태닌이 적어지기 때문이다.
오래된 와인의 바닥에는 침전물이 가라앉아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는 태닌이 와인 속의 색소와 결합하여 부피가 커짐으로 가라앉게 된 것이다. 때문에 침전물이 있는 와인은 태닌이 그만큼 낮다.
매번 와인을 마실 때마다 드라이, 오키, 크리스프, 태닉한 정도를 표현함으로써 마셨던 와인에 대한 기억력을 높여가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이고, 식당에 갔을 때 이러한 단어들을 사용하여 맛을 제대로 표현할 수 있다면, 소믈리에나 웨이터가 손님이 원하는 와인을 찾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최선명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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