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울너럭> -놓쳐버린 아비의 등-
2004-04-06 (화) 12:00:00
임희경 학생주부
아비를 잃었다. 울화가 치밀고 등이 저려 꼿꼿이 서 있을 수가 없었다. 마른 새우처럼 구부러지다 못해 꼬깃꼬깃 말려 버릴 것만 같았다. 오래 전 처음 사랑을 잃었을 때 며칠 동안 등이 저려 잠을 이룰 수가 없던 시절, 당당해 지라는 바람 같은 아비의 충고에 거뜬해 졌었는데, 이제 그 아비를 놓쳤다. 등이 아려 앉을 수가 없었고, 애 간장이 녹아 숨이 터지지 않았다. 화가 치밀어 말문이 막혔고, 눈물이 안으로 안으로 출렁거렸다. 뭍으로 내쫓긴 고기 마냥 버둥거렸다.
한국으로 가는 시간보다 버스에 실려 영안실로 가던 그 50분이 가장 무서웠다. 내가 왜 가는지, 무엇을 잃었는지 정신이 들지 않았다.
때아닌 봄눈이 익숙한 능선과 마을을 한 결로 덮어 주는 동안 원망이 비나리로 간절해져 갔다. 하얀 눈이 세상 골고루 다독이듯 내리듯이 내 아비도 꿈에도 그리던 황해도 고향 나들이에서 휘적휘적 외동딸 마중하러 달려오는 것 같았다.
이제 경계 없는 세상에서 그리던 그 산천 둘러 보셨겠다 싶으니 막혔던 눈물이 들썩거리며 쏟아졌다.
금강산 열렸을 때도 고향 길 아니라며 한사코 마다하신 강한 아비였다. 내가 열 여섯 즈음이었던가, 한 가위 특집으로 이북의 해금강을 처음 보여주던 그 보도를 보고 단 한 번 눈시울 붉어지는 것을 들키시고는 그 사무침을 내도록 감추셨다. 아니 어쩌면 애써 알려고 하지 않았던 것이 솔직한 고백이다.
뒤늦게 이국에 살면서 아비의 그리움을 재어 본 적이 있었다. 길에 핀 쑥부쟁이를 보고 지리산 언저리를 떠 올렸었고, 목청 높여 호객 하던 러시아 아줌마를 보고 마포 골목 식당의 된장 백반이 침을 돌게 했는데. 막혀버린 그 길이 얼마나 애가 탔을까 싶었다. 꿈에라도 만나면 두근거려 안부를 확인했는데. 업어 달라고 보채던 북에 남은 조카를 많이 못 업어 주셨다며 학교 다니는 다 큰 딸을 업어 주던 아비의 등을 무심히 오르내렸었다.
그 간절함이, 심연의 그리움이 병이 되었다. 아비의 뇌를 갉아먹고, 아비의 지성을 흔들었고, 그리고 한없던 덕성과 강인함을 삼켜 버리기 시작했던 것이다.
가시기 사나흘 전에 나눴던 마지막 통화에서 아비가 물었다. 공부는 잘 하냐고, 외 손주는 언제 볼 수 있냐고, 그리고는 느닷없이 물었다. 이북에 고모한테도 안부 잘 넣고 있냐고, 사리원 집에 들렀다 왔는데 궁금해한다는 것이다. 시간과 공간을 넘어 가장 그리운 그 곳으로 자주자주 들리셨었다. 반세기를 감추던 그리움이 딸을 떠나 보내고 한꺼번에 곪아 버렸던 것이다.
내 아비의 그리움이 어디 혼자 만의 몫이었으며, 길 떠난 아비를 찾아갔던 고향 길이 나 뿐이었겠는가. 이 곳에 오기 이전의 삶과 다시 살게 될 아직 모르는 시간 까지 합하면 수백 번을 반복했고, 또 갈 길이겠지만, 그래도 명치가 저려 등을 펼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