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민들레를 뽑으면서

2004-04-03 (토)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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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실 (사모)

어릴 때 민들레 관털을 후후 불며 즐겁게 놀았던 추억이 아름답게 남아있어 내 개인적으로는 민들레꽃을 좋아하지만 잔디밭 위의 민들레꽃일 경우는 얘기가 달라진다. 민들레꽃이 좋다고 그냥 두었다간 얼마 안가 잔디밭이 아니라 민들레 꽃밭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민들레는 뿌리를 깊이 내려 잘 뽑히지 않는 건 물론이거니와 한 포기에 피는 꽃송이 숫자도 무시할 수 없을 만큼 만만찮고 더더구나 그 꽃송이들이 지면서 피우는 관털은 민들레를 기하급수적으로 번식시키는 데 한몫을 하는 일등 공신이다. 하기야 관털이 없다면 번식이 되지도 않겠지만.
우리 뜰도 예외가 아니어서 예사롭게 생각했던 민들레꽃이 어느덧 우리 잔디밭을 온통 잠식해 들어가 거의 민들레 꽃밭이 되어가던 어느 날, 나는 우리 잔디밭으로 하여금 잔디밭다운 잔디밭으로 만들리라 작심하고는 삽을 들고나섰다. 내가 왜 그리 무모한 짓을 했는고 하니 첫째는 그때까지도 잡초 제거약이 있다는 걸 몰랐고(나는 매사에 이리 무지해서 손해볼 때가 많다.) 둘째는 운동 좀 하라고 하도 성화 해대는 남편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서다. 거의 매일 아침마다 그 넓은 뜰을 조금씩 손보기 시작했는데 민들레가 얼마나 많았던지 꼬박 일년 이상 걸렸다.
민들레를 뽑을 때는 밑동 뿌리째 뽑아야지 중간에서 캐기만 해서는 완전 제거가 안 된다. 남은 뿌리에서 계속 돋아나기 때문에 삽을 대고 한쪽 발에 힘을 주어 눌러서 제법 깊숙이 삽을 넣고 흙덩이 채 파 올려서 흙 속에 감추어져 있는 뿌리를 찾아 조심스레 잘 뽑아 올려야 완전 제거할 수 있다.
시작한지가 3, 4년 전인데 땀 흘린 수고의 대가로 2, 3년 전부터 우리 집 뜰에는 민들레가 없다. 간혹 발견될 때가 있는데 그때마다 뿌리 채 뽑아 없애버리기 때문에 우리 집에서 내 별명이 ‘민들레 킬러’다.
운동 좀 하라고 그렇게 성화 해대던 남편이 내가 땀을 흘리며 삽질을 하고 쪼그리고 앉아 민들레를 뽑고 있는 것을 볼 때마다 흐뭇해했지만 그 힘든 운동을 사서하느라고 폭삭 다 늙어버렸다. 어느 날 거울을 유심히 보는데 눈 아래 근육이 축 처져 있어 허연 머리와 어우러져 이건 영락없는 파파 늙은이다. 나를 오랜만에 보던 이들이 한결같이 하던 인사가 여전하시네요였는데 요즈음은 약이 오르게 시리 세월이 많이 흘렀군요 한다.
이렇게 내가 내 얼굴을 상해가면서까지 우리 집 뜰에 있는 민들레를 전멸시켜 놓았는데도 계속 하나씩 발견이 되어 뽑게 되는 건 옆집 잔디밭에 만발한 민들레가 계속 관털을 날리기 때문이다. 마음 같아서는 옆집 민들레도 삽질해서 다 파내 버리고 싶은 마음이 꿀떡 같지만 그럴 수는 없고 그저 오며가며 꽃을 보는 대로 다 따 버린다(주인 눈치 못 채게).
그러면서 문득 이런 생각을 한다. 우리 한국 엄마들이 아무리 내 아이를 잘 다독거려도 이웃의 자녀가 잘못된다면 내 아이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학교 선생님들에게 우리 아이를 잘 봐달라는 뜻으로 돈을 갖다 바치는 엄마들이 아직도 더러 있는 모양인데(사실이 아니기를 바란다) 그처럼 어리석은 일은 없다. 그래봐야 이 미국 선생님들이란 돈은 돈대로 챙기고 뒤에서는 욕하고 업신여기고 멸시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차라리 나눔선교회 같은 자선기관에 기부하셔서 우리의 이웃 자녀들이 잘 되기를 바라는 게 백배 낫고 지혜롭다.
민들레 이야기를 하다가 얘기가 딴 데로 흘러간 듯한데 민들레를 뽑으면서 나는 종종 민들레와 이런 대화를 갖는다. 민들레야, 난 네가 참 존경스럽다. 나도 너처럼 되고 싶어. 믿음의 뿌리를 이렇게 깊이 내려서 아무도 함부로 뽑아내지 못하게 하고 설혹 중간에 꺾이더라도 굴하지 않고 다시 싹을 틔우며 아름다운 삶의 꽃을 부지런히 피우고, 관털을 날려 생명의 복음을 열심히 퍼뜨리고… 그런데, 그러다 어느 날 갑자기 삽질을 당하여 뿌리 채 뽑힐 땐, 민들레야, 넌 더 이상 갈 곳이 없구나. 쓰레기통 외에는. 하지만 난 갈 데가 있단다. 그곳은 천국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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