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노무현의 미소

2004-03-23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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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는 두 동강이 났다. 노무현이라는 정치인을 놓고 반대와 지지로 갈라선 것이다. 반(反)노 아니면 친(親)노다. 완충지대는 없다. 한치의 양보도 없다. 저를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는다는 필생필사의 싸움이다. 이성적 논쟁이나 투쟁이 아니다. 오로지 감성의 충돌, 수의 대결, 인기영합의 권모술수, 그리고 음험한 정치 계산이 깔려 있을 뿐이다. 나라가 두 동강이 난지 어언 반세기, 한데 그 반 토막에서 또 반 토막이 갈리는 불행을 맞고 있다.
곰곰 생각하면 이 민족의 운명이 이토록 모질고 험한가 가슴을 치게 된다. 세계 경제 15위권이라는 언필칭 선진의 나라에서, 아니 권위주의 정치에 막을 내리고 민주화를 이룩했다고 자부해 온 우리의 조국 한국에서, 이런 희한한 일이 벌어지는 사실에, 이국 땅에서 내 나라 잘되기를 일구월심 바라온 해외 동포들의 마음도 서글픔에 쌓여 있을 것이다. 난장판이 된 국회 모습, 길거리를 메운 친노-반노의 군중들이 든 피켓의 물결---민주도 좋고 자유도 좋지만 이 고귀한 가치를 왜곡한 반목과 분열과 투쟁의 현장들이 뉴스의 메인 토픽으로 떠오를 때마다 절로 한숨이 나오리라 짐작된다.
눈을 밖으로 돌리면 과연 우리가 이렇듯 국력을 소모할 때인가 새삼 통분하지 않을 수 없다. 경제 선진국(OECD) 어느 나라가 정치적 반목 때문에 국민이 둘로 갈려 거리 투쟁을 벌이고 있단 말인가. 바로 이웃한 중국, 불과 10여년 전만 해도 한국 박정희 정권의 국가 개발계획을 모델로 삼고 포철과 삼성의 노하우를 빌려간 그들은 지금 세계 최강 미국을 넘보려 하고 있지 않은가. 미국 어느 백화점엘 가도 ‘메이드 인 차이나’ 상품이 즐비한 것은 이를 반증한다.
민족적, 심리적 대결의 대상인 일본, 경제의 장기 침체로 경제대국의 자리가 위협받던 그들이 바야흐로 ‘잇쇼 겐메이’(필생의 힘을 내)를 외치고 머리 끈을 다시 동여맨 뒤, 일장기를 휘두르며 행군을 하고 있지 않은가. 아시아의 다른 ‘소룡들’도 국가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자국민 통합의 길을 세차게 걸어나가고 있다.
한데 우리의 자화상은 우울하고 서글프다. 지난해 한국의 실질 경제성장은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생산 공장의 굴뚝에선 연기가 사라지고 조업 벨트 라인은 멈춰 섰다. 실업자 450만 시대, 인구의 10분의1이 일터를 잃었다. 이십대 태반이 백수(이태백)요, 사십대 오십대면 정년(사오정)이다. 실업 문제야 어느 나란들 없을까. 하나 한국의 경우는 좀 더 심각하다. 실업자 대부분이 대학을 졸업했다는 점이다. 취업문이 닫힌 사회에서 그들은 좌절과 실의만 있을 뿐이다. 배운 학문과 기술을 거부당하고 있는 것이다.
이민 지망행렬이 날이 갈수록 길어지지만 그 또한 쉽지 않다. 이제 고학력의 이태백들이 갈 곳은 시위 현장뿐이다. 자기 신세가 이 지경이 된 데는 노무현 정권의 잘못된 정책 때문이라고 판단하는 젊은이들은 ‘반노’ 시위에, 그럼에도 왠지 노무현에 매력을 느끼고 그가 무슨 구원의 지도자인 양 마음 끌리는 또 다른 젊은이들은 ‘친노’ 횃불 시위에 나가고 있는 것이다. 그 와중에 가정도 붕괴되고 있다.
왜 이 지경까지 왔는가. 거듭 말하거나와 궁극적 책임은 노무현 대통령에게 있다. 야당이 소수정권 발목을 잡으니 대통령인들 무슨 뾰족한 수가 있느냐는 반론도 한다. 하지만 국가 발전에 앞장서서 희생하고, 동고동락하고, 호소하고, 그래도 안 될 때는 가장 합당한 결정을 내려 나라를 이끄는 게 통치자의 몫이다. 이를 위해선 도덕적 기반이 단단해야 한다. 한데 노무현씨는 이미 그 기반을 상실했다. 지도자로서 갖춰야 할 자질이 부족하다는 지적은 나만의 주장이 아니다.
매사 불리한 그가 살아나서 나라를 이끄는 통치자의 자리를 되찾으려면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있었다. 다름 아닌 뼈아픈 자기 반성과 빈 마음가짐이었다. 이런 의미에서 나는 지난 2월 초 노씨의 취임 1주년에 즈음한 공개 편지에서 자신과 국가의 장래를 생각해 “오로지 마음을 비우고 ‘무당파 대통령’을 선언하라”고 촉구한 바 있다.
하지만 잉크가 마르기도 전, 그는 ‘무당파’는커녕 “열린 우리당에 입당하고 힘껏 도울 생각”이라고 선언했다. 거꾸로 간 셈이다. 결과는 탄핵으로 나타났다. 국회 탄핵을 받은 대통령--이게 무슨 망신인가. 노사모와 젊은이들의 도움으로 ‘불쌍한 노무현 살리기’ 촛불시위가 일고 ‘탄핵은 좀 심했다’는 동정론에 힘입어 기사회생의 즐거운 시간을 맞은 듯 하지만 그는 좀 더 자신의 모든 것, 주변의 부정부패와 자질과 능력과 이념과 과거 기록들을 펼쳐 놓고 반성의 시간을 갖는 게 마땅하다.
자신의 문제로 인해 나라가 두 동강이 나는 사태가 일어났다면 뭔가 진솔한 반성과 결심을 해야 할 차례가 아닌가. 10분의1이 어떻고, 재신임이 어떻고 하는 식의 궁색한 자기 변명에 이젠 신물이 난다고들 말한다.
하지만 탄핵 이후 그의 입가엔 미소가 피어오르고 있다. 마음을 가득 채워가고 있는 인상도 받는다. 총선의 압도적 대승--‘에라, 이 참에 저 미운 오리들(보수파)을 일패도지하고 진보좌파와 나의 백조들로 국가의 주류를 완전히 물갈이하자’는 욕심이 용솟음치고 있는 건 아닌지. 그렇다면 나라의 운명은 어찌될까. 앉아서 이삭 줍는 평양 발 파안대소가 귓전을 때린다.

안영모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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