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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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려되는 ‘친노’ ‘반노’ 결집

2004-03-18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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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 찬반 조직화는 분열만 조장

본국정치 관심이 ‘적대적 편가름’명분 안돼
주류사회에 비쳐질 집단갈등 양상 고려하길
절제된 모국사랑으로 커뮤니티 화합 지켜야


어수선한 탄핵정국의 파장이 한인사회에까지 미치고 있다. 탄핵을 반대하는 사람들과 찬성하는 사람들이 따로 뭉치면서 새로운 갈등국면을 조성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마주보고 달리는 기차는 두려움을 준다. 탄핵 찬반 공방이 이런 모습이다. 정면충돌해 으스러진다 해도 개의치 않는 듯한 기세이다.
“탄핵은 헌법 절차에 따랐으므로 헌정 질서를 유지한 것이다,” “탄핵사유 없는 탄핵소추로 헌법과 법률을 유린했다” - 탄핵 찬반 논리의 정당화에는 법 만한 게 없지만 쌍방에 타협의 틈새가 보이지 않는다.
“탄핵은 의회민주주의의 시금석이며 민주주의의 꽃이다,” “후손을 위해서라도 반민주 세력과의 일전불사로 피 흘려 얻은 민주주의를 수호해야 한다” - 단골메뉴인 민주주의 카드를 끄집어내도 양측은 서로 다른 ‘원론’을 제시한다.
“국회에서 다수결에 의해 탄핵이 가결된 것은 존중돼야 한다,” “말이 다수결이지 국회의 쿠데타나 다름없다” - 탄핵 표결 결과에 대한 해석도 천양지차이다.
“국회의원은 국민이 선출했으니 탄핵 가결은 국민의 뜻이다,” “국민이 뽑은 대통령을 임기 말 국회의원들이 탄핵한 것은 지탄받을 일이다” - 하늘같은 민의 마저도 갈기갈기 찢긴다.
“대통령으로 만들어준 조강지처 민주당을 버렸으니 탄핵받은 것은 자업자득이다,” “총선 패배를 예상하고 정국 혼란을 야기하려는 두 야당의 야합이다” - 정당 구도의 현실도 제 편에 유리하게 읽는다.
“탄핵은 경박하고 독선적인 대통령이 치러야 할 마땅한 대가이다,” “개혁을 주도하는 대통령을 끌어내리려는 수구냉전 세력의 패거리 정치가 빚은 비극이다” - 리더십 평가에서도 간극은 좁혀지지 않는다.
“불법 정치자금을 액수의 과다로 차등화 하려는 것은 치졸하다,” “부패의 원조라 할 수 있는 야당이 탄핵을 주도한 것은 뭐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라는 격이다” - 정치인의 금도인 청렴도에 대한 공박에서도 양측은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는다.
“현 정권의 잘못된 개혁으로 국민들이 수난을 겪고 있다,” “구닥다리 정치인들의 몰상식한 행동으로 국민들이 속을 태우고 있다” - 민심을 뒤숭숭하게 한 장본인이 누구인가 라는 물음에도 이처럼 손가락으로 서로를 가리킨다.
탄핵결정은 법을 토대로 하지만 다분히 정치적인 움직임이다. 하물며 대통령을 밀어내려는 탄핵이야말로 고도의 정치적 계산이 깔린 조치이다. 딱 부러지는 수학공식을 대입할 수 없는 상황이다. 양측 나름대로 일리가 있으니 한쪽이 전적으로 잘못했고 다른 쪽이 백 번 옳다고 한다면 생떼부리기에 불과하다.
헌법재판소가 어떠한 결정을 내리더라도 양측의 갈등이 단숨에 일소되기 어렵다. 서로에 대한 미움과 분노의 앙금은 상당기간 남을 것이다. 그러므로 한국이라면 몰라도 한인사회까지 덩달아 탄핵의 소용돌이에 휘말릴 이유가 어디에 있는지 자문할 필요가 있다.
누구나 탄핵과 같은 주요 현안에 대해 의견을 품거나 밝힐 권리가 있다. 한인들에게도 예외는 아니다. 자신과 생각이 같은 사람들과 대화하며 자기확신을 갖거나 스트레스를 풀 수 있다. 견해가 다른 사람들과 논쟁하며 상대방 논리의 장단점을 짚어보는 것은 건전하다.
문제는 탄핵 소견이 집단화하고 조직화하는 데 있다. 집단적 사고는 경직성과 폐쇄성을 특성으로 한다. 상이한 집단적 사고는 접점을 찾기 힘들다. 한국민들이 집단행동을 하는 것은 일종의 ‘집안 일’이다. 그러나 한 다리 건너인 미주한인들이 탄핵 찬반의 세 과시에 나선다면 분명 ‘오버’하는 것이다.
한국 대선 때 한인사회가 지지 후보에 따라 쏠림 현상을 보이면서 커뮤니티 화합을 저해한 일을 잊어선 안 된다. 그래도 선거는 후보들의 경쟁 마당이다. 하지만 탄핵은 다르다. 탄핵 정국은 ‘원고’와 ‘피고’로 나뉘고, ‘가해자’와 ‘피해자’로 상대를 질타하는 처지이다.
출발부터 적대 관계가 설정되고 판정이 나오기까지 관계가 악화된다. 결과가 나왔다고 해서 깨끗한 승복을 기대하기 힘들다. 단합해서 시작한 일도 중도에 티격태격하다 ‘그릇 깨기’가 일쑤인데 처음부터 ‘결전 태세’이니 그 추이가 걱정되지 않을 수 없다.
한인사회가 이러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너무 ‘한국적’이다. 탄핵 찬성이든 반대이든 한인들의 집단행동은 명분도 실리도 약하다. 이런 저런 모임에서 산발적으로 조용히 의견을 나누는 정도면 족하다. 고국이 하루빨리 안정을 되찾기를 바라는 간절함이면 된다.
탄핵을 찬성하건 반대하건 자신들의 ‘합창’이 헌법재판소 재판관의 귀에 들어가 판단에 영향을 주길 바라는 것은 도를 넘는 것이다. 바다 건너 떨어져 사는 한인들의 몫이 아니다. “서로 반목하려는 게 아니라 사회정의를 회복하기 위한다는 대의로 뭉친다”고 해도 미국에 사는 우리에게 대의는 멀고 반목은 가깝게 마련이다.
탄핵 지지파는 한국의 지지파에, 반대파는 한국의 반대파에 힘을 실어준다고 여길 지 모른다. 전혀 부인할 수도 없다. 그러나 오히려 탄핵 지지파는 한국의 반대파로부터, 탄핵 반대파는 한국의 지지파로부터 “미국에 사는 사람들이 왜들 야단이야” 하는 부정적인 반응을 자아낼 수 있다. 한인사회 전체의 이미지에 득보다는 실이 클 것이다. 집단행동이 불러올 역효과이다.
아무리 평화적인 방법을 구사한다고 해도, 탄핵 가결 이후 한국의 국론분열을 상세히 보도한 주류언론이 한인사회의 집단 갈등 양상을 모른 척할 리 없다. 한인타운에 몰려와 카메라를 들이대고 꼬치꼬치 캐물을 것이다.
그리고 한국뿐 아니라 미주한인사회도 양분됐다는 기사를 흥밋거리로 내보낼 것이다. 주류사회에서 “코리언들 조국사랑 정말 대단하다”고 할까 아니면 “여기까지 와서 너무 지나치다”고 할까. 피끓는 가슴보다 차가운 머리가 요구되는 시점이다.
한국사회는 탄핵으로 ‘화합의 질그릇’을 깨뜨렸으니 깨진 화합을 붙이는 일이 남았다. 한인사회는 애당초 탄핵과 무관한데도 찬반 조직화 움직임으로 금이 갈 것 같은 분위기이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찬반 세력 조직화보다 커뮤니티 화합이다. 소란스런 애국보다 절제된 모국사랑이 한국과 한인사회에 유익함을 명심해야 한다. 한인들의 성숙한 시민의식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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