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과 관계 이야기 <결혼이라는 긴 여행>
2004-03-06 (토) 12:00:00
이은희 (결혼가족치료사)
’여자 팔자는 뒤웅박 팔자라는 말이 있다. 어떤 상대를 만나 어떠한 결혼생활을 하느냐에 따라서 여자의 삶이 남자의 삶보다 더 많은 영향을 받아온 것을 부인할 수는 없다. 부부의 사회경제적인 키 재기를 하기에 앞서, 당사자들이 왜, 무슨 목적, 동기, 혹은 기대를 가지고 결혼이라는 중대사에 뛰어들었는지 생각해 볼만하다.
40대 중반의 박씨는 가정폭력이 심한 가정에서 성장했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끊임없는 불화는 형제자매들 간에도 우애와 협력의 정신보다는 질투, 분노, 불화만을 만들어 놓았다. 그녀는 자라면서 도망치고 싶은 열망이 강했다. 두어 군데 선을 보다가 자신의 집과 가장 멀리 떨어진 곳에서 직장생활을 하던 이와 만난 지 2주만에 결혼을 결정했다. 신혼여행에서 돈 문제로 시작된 부부의 다툼은 머지않아 손찌검과 폭력을 동반했다. 결혼한 지 1년이 채 못되어 박씨는 자신의 새로운 가정이 금방 도망쳐 나온 자신의 친정과 다름이 없음을 깨달았다.
30대 말의 이씨는 어린 나이에 엄마를 잃었다. 아버지의 얼굴을 본 기억도 없고 아버지 이야기를 들은 기억 또한 희미하기만 하다. 친척들의 눈치를 받아가면서 자라던 10대에 가출하여 대도시로 나갔고 흔히 말하는 서비스업에 종사하게 되었다. 이씨는 서비스 일을 그만두고 살림하고 아이를 기르며 평범한 주부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 어느 날 친구 소개로 멋져 보이고 남자다운 박력이 많았던 이를 만나 결혼하였다. 결혼 첫날부터 남편은 술과 도박으로 시간을 보냈고 이 핑계 저 핑계로 일을 하지 않았다. 현모양처의 꿈 또한 이루고자 아들과 딸을 두었지만 자식들이 그들의 결혼을 살리지는 못했다. 이씨는 결국 아이들을 데리고 또 한번 가출하여 미국으로 건너왔다. 두 아이는 아버지에 대한 또렷한 기억이 없이 성장한 엄마의 전철을 밟고 있다.
경제적인 의존과 안정의 추구, 일상생활의 불편함 해소, 성적인 욕구충족, 임신의 수습대책, 다른 지역으로 이주, 신분유지 혹은 상승 수단, 영주권 등 신분문제 해결, 결혼 적령기에 대한 사회적인 압박감, 외로움 등의 여러 다양한 이유와 기대를 가지고 사람들은 결혼이라는 긴 여행을 떠난다.
당신의 결혼여행은 어떻게 시작되었나요? 어떻게 진행중인가요? 도중에 동반자가 바뀌지는 않았나요? 혹여 무엇으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결혼여행을 시작한 것은 아닌가요? 혹은 당신의 자녀가 도망치기 위해 결혼을 준비하고 있지는 않은가요? 따뜻한 봄날, 여기저기서 결혼 준비에 분주해 보이는 젊은 남녀와 부모들을 목격하면서 한번쯤 스스로와 대화를 나눠봄직한 주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