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어떤 방문

2004-03-04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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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마다 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지 못하는 곳을 방문한다. 일어나자마자 옷장 앞에 서서 토요일 날 입을 옷을 고른다. 푸른색 옷은 안되기 때문이다. 오늘 아침에 입은 옷은 회색 바지에 갈색 잠바이다. 집을 나서기 전 지갑을 열어 신분증을 확인한다. 한번은 지갑을 집에 놓고 갔다가 그곳에 들어가지 못하고 되돌아 온 경험이 있기에 지금은 집을 나서기 전에 운전면허증이 지갑 속에 있는지 체크하고 나선다.
20분쯤 운전하면 그곳 파킹 장에 도착하게된다. 그곳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심한 검사를 거쳐야 들어 가게된다. 정확히 8시에 나는 사인을 하고 소지품을 보인 후에 첫 번째 문을 통과한다. 몇 발자국 들어가면 두 번째 문이 나오는데 검사관이 다시 소지품을 점검한다. 여기서는 공항에서처럼 금속탐지기를 거쳐야 하는데, 신발을 벗지 않으면 탐지기가 장치된 검문소를 지날 수가 없다. 또 얼마간 가면 세 번째 검문소가 나오는데, 또 다시 신분증을 보이고 이름을 다시 한번 사인한다.
이번에는 검찰관이 형광물질이 섞인 노란색 잉크로 내 손등 위에다 도장을 찍어준다. 잠시후 큰 철문이 열린다. 발을 안으로 딛는 순간 문은 등뒤에서 닫힌다. 그와 동시에 마지막 문이 열린다. 그리고 나는 이상한 나라로 걸어 들어간다.
샌퀸튼 감옥이다. 지난 몇 년 동안 나는 토요일 아침마다 옥중에 있는 죄수들을 방문하여 성경공부를 인도하고 있다. 나는 이곳에 올 적마다 문화 쇼크를 경험 한다. 낯선 나라를 방문한 그런 느낌이다. 그들은 푸른색 옷을 입고 있다. 생활습관도 다르다. 호루라기 소리가 나면 그들은 즉시 앉는다. 사용하는 언어도 다르다. “H동” “평생 복역자” 같은 생소한 단어가 나의 어휘의 한 부분이 된다.
샌퀸튼 방문은 외국을 방문할 때처럼 낯설다. 한국을 처음 방문하였을 때 느꼈던 똑같은 기분이다. 그들은 진정으로 친절하다. 그러나 그곳은 나의 집이 아니다. 나는 3시간을 그곳에서 보내는 여행자와 같다.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나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삶은 살고 있다.
샌퀸튼 뜰 안에 들어가면 장미꽃이 심어진 잘 가꾸어진 정원이 있다. 모양을 낸 나무들 사이로 샌프란시스코 베이가 보인다. 가끔 갈매기들이 콘크리트 연못에 내려앉는다. 갈매기들은 벽을 넘어 날아 와서 잠깐 감옥 뜰 안에서 보내다가 담 밖으로 훨훨 날아간다. 나는 이곳을 방문하기 위하여 얼마나 복잡한 절차를 걸쳐야 하였는가. 지금은 나의 친구가 된 죄수들이 이곳을 탈출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오늘은 여섯 명의 죄수들과 성경공부를 했다. 이들에게 무슨 이유로 감옥에 왔는가는 물어 보지 않는다. 자기들이 자원하여 정보를 제공하면 몰라도. 제임스는 살인 미수로 들어 왔다한다. 그는 이웃집과 다투는 중에 총을 쏘아 이웃에게 상처를 입혔다한다. 몇 달에 한번씩 쌍둥이 아들들이 그를 방문한다고 한다.
헤롤드와 다니는 마약 범으로 들어왔다. 그들은 자신들의 범죄에 대하여 말을 않지만 그들의 팔에 험한 흉터가 말한다. 다니는 무기수이다. 그는 21살 때 사람을 죽였는데 지금 45살이다. 그는 모범수이다. 해마다 가석방판결에 오르지만 해마다 그는 거부당하여왔다. 새로 당선된 주지사가 가석방 허락을 그는 기도하고 있다. 칼빈은 강도죄로 들어왔는데 올해 9월에 석방 될 것이라 한다.
오늘이 헤롤드와는 아마 마지막 만남이 될 것이다. 이번 금요일에 그는 석방될 예정이다. 성경공부 후우리는 헤롤드를 위하여 기도하였다. 석방이 된 후에 그는 수많은 힘든 일에 부딪칠 것이다. 수 십 년을 세상과 차단된 곳에서 살아왔던 그에게 정부는 100불을 준 후에 그를 버스정류장에 떨궈 줄 것이다.
성경은 죄수를 기억하라고 가르친다. “자기도 함께 갇힌 것 같이 갇힌 자를 생각하라”고 말한다. 일주일에 한번씩 그들에게 성경공부를 인도하지만 그들의 얼굴은 내 눈앞에 날마다 떠오른다.

<교육학 박사·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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