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 거품’ 이대로 좋은가
2004-03-04 (목)
팍 꺼지면 타운경제에 치명타 우려
“E2비자 취득자는 봉” 권리금 장사 붐
‘문지방 높아진 시장’에 실수요자만 허탈
셀러·바이어·브로커 모두 냉정해져야
불경기에도 ‘잘 나가는 사람’이 있고 호경기에도 ‘거꾸러지는 사람’이 있게 마련이다. 한인 비즈니스 업계가 그렇다. 경기가 회복세에 있고 한국서 꾸준히 돈 보따리를 짊어지고 건너오고 있어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 의해 비즈니스 가격이 오름세를 타는 것은 자연스럽다. 문제는 올라도 너무 오른다는 점이다. 그러다 보니 과열냄비가 식어버리면 어찌될까 하는 염려가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다.
350만 달러가 610만 달러로. 한 한인이 1년 반도 안 돼 거둬들인 수입이다. 이 한인은 LA외곽에 상가를 구입했다가 최근 부동산 붐을 타고 가격이 치솟자 재빠르게 팔아 260만 달러를 벌었다. 연봉 5만 달러 샐러리맨이 52년간, 연봉 10만 달러 봉급자가 26년간 일해 한푼도 안 쓰고 저축해야 만질 수 있는 거액이다. 단순히 돈벌이로만 치자면 이 한인의 스토리는 대단한 성공사례이다. 이 한인은 사는 게 ‘꿀 맛’일 게다.
하루하루가 ‘떫은 감 맛’인 사람들도 있다. LA 근교에서 마켓을 운영하는 한인은 힘들 때마다 “정리하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는 연 전에 비이민투자비자(E2)로 와, “잘된다”는 전 주인의 말에 덜컥 구입을 했다. 그런데 나중에 찬찬히 따져보니 전 주인이 매장에 있는 재고를 원가가 아닌 판매가로 산정 했을 뿐 아니라, 얼마 후 지척에 대형마켓이 들어설 것이라는 정보를 쉬쉬한 바람에 장사가 신통치 않다며 ‘죽상’이다. 팔려고 해도 제 값을 받지 못할 것 같다며 끌탕을 하고 있다.
업소의 매상을 교묘하게 눈가림한 셀러에 당하는 경우도 있다. 한 한인은 한 달 매상이 4만 달러라는 셀러의 주장을 확인하기 위해 직접 업소에 들러 나름대로 꼼꼼히 점검을 했고 셀러의 말이 대충 맞는다는 확신이 들어 계약을 했다. 예상대로 처음 한 두 달은 장사할 만 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매상이 급격히 줄어 당초의 절반 수준을 맴돌았다. 자초지종을 알고 보니 셀러가 업소를 팔기 전 백인과 히스패닉 고객을 겨냥해 LA타임스와 라오피니언에 할인판매 광고를 낸 것이다. 그래서 이들 타인종 손님이 일정기간 몰려든 것이었다. 셀러는 세일광고를 내고는 매상을 높이 불러 흥정했고 바이어는 ‘덫’에 걸린 것이다. 소송을 하려 해도 계약서에 하자가 없으니 마음만 숯검정이 되고 있다.
자그마한 커피샵을 25만 달러 들여 인수한 뒤 열심히 해보았으나 도저히 수지를 맞출 수 없어 약 10만 달러 가량 손해를 감수하며 판 경우도 있다. 별 볼일 없는 가게를 비싸게 구입했다가 장사가 안 돼 한국서 몽땅 긁어 온 얼마 안 되는 돈에서 생활비로 곶감 빼먹듯 까먹으며 걱정하는 한인들도 더러 있다고 한다.
비즈니스 가격이 천장 모르듯 오르는 데 이유가 없는 것은 아니다. 남가주 특히 LA에는 인구 유입이 꾸준하다. 동네가 북적대니 장사를 하면 가능성이 있다는 판단이 설 만하다.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뉴욕이나 시카고 등지에 첫 발을 디딘 후 약 1년간 장사거리를 찾다가 짐을 꾸려 LA로 온 한인들이 한둘이 아니고 이 가운데는 수천만 달러를 투자하고 싶어하는 큰손도 있다.
장사도 장사지만 미국 정착 방편으로 E2비자를 취득하기 위해 비즈니스에 두리번거리는 바이어가 많은 것도 가격상승을 부추긴다.
주한미대사관을 통해 발급된 E2비자는 지난 98년 510건에서 지난해 1,961건으로 6년 새 4배 가까이 폭증했다. 또 미국에 체류하면서 E2비자를 신청하는 한인까지 합하면 지난 한해 6,000여 명이 발급 받은 것으로 추산된다. 그리고 이들이 미국에 들고 오는 돈이 연간 6억 달러를 넘는다고 하니 비즈니스 가격이 오르지 않는다면 되레 이상하다.
한국에서 먹고살 길이 막막해 미국에 오는 생계형도 있지만 자녀의 교육과 가족의 삶의 질을 추구하는 사람들도 상당수이다. 비자만 잘 받을 수 있다면, 장사가 잘될지 모르는 비즈니스라도 수십만 달러를 기꺼이 내놓을 수 있는 ‘재력가들’이 수두룩하다.
지난해 남가주 한인 스몰 비즈니스 거래건수가 전년도보다 5% 증가한 2,452건으로 매달 200건 정도가 거래됐다. 업종별로는 식당 425건, 마켓 266건, 리커 227건, 세탁소 159건, 카페 117건 등으로 요식업이 37%를 차지했다. 평균 거래가격은 과거 20-30만 달러에서 30-60만 달러로 상승했다. 이러한 통계수치가 ‘거래 붐’ 현상을 그대로 보여준다. 또 E2비자취득자들 중에는 화이트칼라 출신이 많고, 이들이 운영하기 쉬운 업종을 찾다보니 특정업소의 가격상승이 초래되기도 한다. 카페, 비디오가게 등은 3년 새 권리금이 갑절이 됐다.
권리금은 한달 매상의 12-15배는 보통이고 목이 좋으면 18배를 호가하는 데도 살 사람은 줄을 서 있다는 게 관계자의 설명이다. 가까운 중국타운에서 오가는 권리금의 2배가 넘는다고 한다. 가게를 오픈하기도 전에, 성공한 비즈니스맨이 되기보다 어느 정도 터를 닥은 뒤 비싼 권리금을 받고 팔겠다는 ‘작은 한탕주의’가 번지는 것도 요즘의 풍속도이다.
미국에 갓 온 사람들은 영어가 서툴다보니 한인들이 모여 사는 지역을 선호하게 되고, “빨리 정착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성급한 투자패턴을 보인다. 이러한 요인도 한인타운 비즈니스 가격을 올린다. “무슨 가게가 잘된다더라”는 말에 솔깃해 ‘묻지마 투자’를 했다가는 1-2년 내 쪽박을 차기 십상이라는 공인회계사의 조언을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 한인업소의 운영기간이 보통 3년이라는 업계의 진단에서 섣부른 창업의 위험성을 읽을 수 있다.
일부 비양심적인 업주와 브로커는 장사가 잘 안 되는데도 어수룩한 사람에게 덤터기를 씌워 비싼 값에 팔아 넘기기도 한다. 20만 달러만 받으면 감지덕지라는 업주의 말에 30만 달러에 팔아주겠다는 일부 브로커의 행태도 시장교란에 한몫 한다. 결국 이처럼 비정상적이고 불건전한 비즈니스 거래의 현주소는 E2비자 취득자든 영주권자든 시민권자든 진짜 장사 한번 잘해보겠다는 실수요자만 골탕먹인다. 비즈니스를 오픈하려는 사람들은 허탈하기만 하다.
비즈니스 거래는 삼위일체로 성사된다. 셀러, 바이어, 브로커의 합의로 하나의 거래가 탄생한다. 최근의 왜곡된 시장도 이들 3자의 합의로만 바로 잡을 수 있다. 매상이나 권리금을 부풀리지 않는 셀러, 철저한 시장조사를 하는 바이어, 합리적인 선에서 계약을 유도하는 브로커가 시장을 선도해야 한다.
힘들여 모은 종자돈으로 한 단계 도약하려는 비즈니스맨, 비즈니스우먼을 위해서만이 아니다. 거품이 꺼졌을 때 한인경제 전체가 휘청거리지 않을까 하는 걱정에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