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은 라틴어로 고통이란 뜻이다. 예수의 마지막 시간의 고통과 고문을 주제로 한 멜 깁슨의 영화는 지금껏 영화에서 다룬 것 중 가장 가학적이고 잔인하다. 예수가 인류를 죄를 속죄하기 위해 얼마나 엄청난 고통을 당했는가를 보여주기 위한 종교적 목적을 지난다는 점으로 감독은 피가 낭자한 이 영화제작을 합리화하고 있다.
예수의 살점이 떨어져 나가는 장면에 숨을 조이고, 수난의 시간이 이어지면서 연민의 감정으로 스크린을 쳐다보고 종국에는 과연 누가 이토록 잔인한 죄를 저질렀는가 하는 물음을 하게 만든다. 영화 관객들의 분노는 예수를 처형하게끔 한 유대인 랍비와 유대인들에게 향하게 돼 있다.
증오의 대부분은 성경의 마태복음에 나온 “그의 피가 우리와 우리의 후손에게…”라는 구절에 기초하고 있다. 마르코, 누가, 요한 복음에는 기록되지 않은 이 구절은 오랜 세월동안 반 유대 정서를 부채질했지만 엄연히 성서에 기록돼 있다. 깁슨과 그의 연출자들이 이를 만들어낸 것은 아니다. 또한 성서 내용을 왜곡한 것도 아니다. 그러나 성서가 기록한 당시와 현재는 다르다. 나치즘이 패퇴한 뒤 가톨릭 교회는 특정 민족에 대해 적개심을 불러일으킬 소지가 있는 이 부분에 대해 입장을 표명했다. 1965년 교황 폴 6세는 제2 바티칸 공의회에서 가톨릭 교회는 일부 유대 지도자들과 그의 추종자들이 예수의 사형에 압력을 가했지만 모든 유대인들이 비난의 대상이 돼서는 안되고 현재 유대인들도 증오의 대상이 돼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가톨릭 교회의 이러한 입장 표명은 종교간 이해와 관용에 있어서 커다란 진전을 뜻하고 성서를 해석하는 데에서도 상당한 변화를 의미한다. 하지만 일부 가톨릭 신자들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깁슨도 이러한 그룹에 속하는 것으로 보도됐다.
인류의 영적 갈구에 대한 해답을 모색하는 데 ‘열린 해석’이 필요하다는 데 바로 성경의 충만함이 있다. 이러한 점에서 예수의 수난을 중세 식으로 해석하고 영상화한 깁슨의 작품은 분노를 야기한 점에서 기독교도와 유대교도 모두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윌리엄 새파이어/뉴욕타임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