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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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에 남긴 발자국

2004-02-19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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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제주도에서 고대인의 발자국을 발견하였다는 뉴스를 읽었다. 화석화된 자국은 5만년 전에 살았던 인간의 발자국으로 추측되는데, 그 자국을 김정율이라는 대학교수가 발견하였다고 보도하였다. 21-25 센티미터 정도 되는 자국은 사람 발자국임이 틀림없다는 주장이다. 발꿈치와 발가락뿐 아니라 발바닥 모형도 사람의 발자국의 독특함을 갖추고 있다 한다. 제주도에서 발견된 이 발자국은 아시아에서는 처음으로 발견된 구석기시대 사람의 발자국이라는 보도이다. 한국은 케냐, 남아공화국, 탄자니아, 칠레, 프랑스, 이탈리아 등 여섯 나라 엘리트 그룹에 가입한 셈이다.
오래 전에 한반도에서 살았던 그 고대인의 이름을 무엇이라고 부르는지 모르겠다. ‘단군 맨’ 이라고 부르면 어떨까?
나도 제주도에 발자국을 남긴 적이 있다. 5만년 전에 남긴 것은 아니지만 그 정도 오래된 느낌이다. 1974년이다. 나는 한국에서 결혼을 하였는데, 직장일 때문에 아내와 나는 3월에 결혼식을 하였지만 신혼여행은 6월에야 갈 수 있었다. 제주도 여행은 가난한 사람의 하와이 여 행이었고, 신혼여행지로 인기가 있었다.
그 당시 나는 대한항공사에서 영어를 가르쳤던 덕분에 비행기표를 디스카운트해서 구입할 수가 있었다. 얼마정도 디스카운트를 받았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체크인 카운터에서 비행기표 디스카운트 받은 정도의 돈을 주고 난 후에야 탑승할 수가 있었던 기억이 있다.
나는 비행기표 예약을 미스터 & 미세스 포먼이라고 하였는데, 불행하게도 아내는 ‘미세스 포먼’이라고 적힌 신분증이 없었던 것이다. 책상 밑으로 직원에게 500원을 주고 그 문제를 해결하였던 기억이 난다.
대부분 여행자들처럼 우리도 볼거리라고 이름난 곳을 찾아다니고, 해녀들도 만나고, 인적이 없는 조용한 모래사장을 걷기도 하고, 화강암에 앉아 바다 구경도 하였다. 중방 폭포라는 바닷가에 있는 폭포가 가장 인상 깊다. 그 유명한 폭포는 동양에서 유일하게 물이 바다로 직접 떨어지는 희귀한 폭포라 한다. 폭포가 바다로 떨어지면서 만드는 물안개 속에 수백 개의 오색 영롱한 무지개를 만들었다. 무지개를 잡으려고 물안개 속으로 뛰어들어갔다가 물벼락을 맞은 후 찍은 신혼여행 사진이 지금 우리 집 서재 벽에 걸려있다.
다음 날 아침 새벽 4시 30분에 일어나서 성산포로 일출 구경을 갔다. 큰 화강암 바위에 앉아서 바다위로 서서히 떠오르는 아침해를 맞이하였다. 아침해도 아름다웠지만 수백 마리의 양떼들이 동이 트는 안개 낀 계곡 사이사이에 흩어져 풀을 뜯 고 있는 모습은 정말 볼만한 광경이었다.
해돋이 구경을 끝낸 후 우리는 섬 가장자리를 돌며 운행하는 버스를 타고 제주 여행을 하였다. 완행버스 여행 그 자체가 제주도 경험이었다. 나이든 아주머니들이 소리지르는 닭을 머리에 이고 수시로 버스에 탔다가 내렸다. 어떨 때는 혹시 내가 생선시장 복판에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기도 하였다. 생선으로 가득 찬 광주리들로 버스가 가득 채워졌기 때문이다.
그 당시 제주도는 한국 본토에 비교하면 한 세대 정도 뒤떨어진 것 같아 보였다. 초가지붕 집들이 대부분이었다. 자기 키보다 더 큰 짚단을 등에 메고 걸어가는 어린아이들을 길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었고, 변소 돼지도 제주도에서 보았다.
나의 발자국이 제주도 어느 곳에 남아 있을지 의심스럽다. 30년이 지난 지금, 그때 내가 방문한 흔적은 모두 사라졌을 것이다. 언제가 나는 제주도를 다시 방문하고 싶다. 나의 인생이야기의 한 부분으로 남아있는 제주 섬 곳곳을 다시 찾아가려 한다. 다음 방문에는 구석기시대 고대인의 발자국 흔적도 찾아가서 보고 올 계획이다. 그리고 아내와 나는 새로운 발자국을 제주도에 남기고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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