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해외 한인을 ‘세계화 첨병’으로 인식해야

2004-02-19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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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근대적 병역법은 해외 인재 ‘차단 벽’
이중국적·참정권 ‘윈-윈’ 차원서 검토를혜택만 챙기려는 일부 얌체 한인도 문제

벼랑 끝에 몰렸던 재외동포법이 간신히 살아났지만 한국의 재외동포정책은 600만 해외한인의 역량을 십분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열린 사회’를 표방하면서도 해외한인들에게는 곳곳에서 ‘닫힌 정책’으로 대한다. 이대로는 해외한인은 물론 한국에도 마이너스다.


오는 6월 18세가 되는 아들과 한국을 방문하려던 한 한인은 하마터면 큰일날 뻔했다며 가슴을 쓸어 내렸다. 한국의 속인(혈통)주의 때문에 자동 이중국적자가 된 아들이 18세가 넘으면 국적이탈이 허용되지 않고 한국국적을 계속 보유하게 되면서, 향후 한국 체류와 관련해 군대에 끌려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다른 한인은 “아들이 18세가 넘어 병역문제로 골치가 아플 것 같으면 아예 한국을 나가지 않겠다”며 ‘낡은 병역법’을 쏘아붙였다.
병역에 대한 한국정부의 알레르기 반응은 최근 터져 나온 한국거주 미주한인들에 대한 징집 집행에서 또렷이 감지된다. 일본계 증권회사의 서울지점에서 근무하다 징집영장을 받은 한인, 원어민 영어교사로 활동하다 징집된 한인, 결혼하기 위해 한국에 갔다가 과거 한국에 일정기간 살았던 게 빌미가 돼 징집된 한인의 처지와 같이 속 터지는 사례가 이어진다.
이밖에 국적이탈 신고 규정을 모른 채 한국에서 취업중이라 언제 군에 소집될 지 모르는 처지에 있는 한인들이 있다. 한국에 나갔다 옴짝달싹 못하는 한인들이 미주한인 50여명을 포함해 연간 200명에 달한다는 병무청 추산은 이 문제가 두고두고 ‘뜨거운 감자’로 남을 것임을 예고한다.
호적에 이름이 올랐건 오르지 않았건 18세 이전에 국적이탈을 해야 병역법에 저촉을 받지 않으며, 17세 이전에 한국에 나가 1년 이상 살았던 기록이 있으면 그나마 국적이탈을 하려 해도 할 수 없다고 하니 ‘현대판 쇄국’까지는 아니더라도 해외 인재의 한국 내 활동을 차단하고 있다는 비난을 면할 수 없다.
한편으론 세계화 시대에 해외 우수한인 인력을 활용하겠다는 말을 하면서도 실제론 병역 규정으로 이들의 활동을 규제하고 발목을 잡는 이율배반을 보이고 있다. 미시민권자 징집이 굉음을 내자 병역법 적용 체류기간을 ‘1년 이상’에서 ‘3년 이상’으로 연장하는 법안을 입법예고중이라 다소 숨통이 트일지 모르지만, 법개정에 앞서 한국정부와 국민의 인식 변화가 선행돼야 한다.
국회의원 아들의 군 면제율이 일반 국민의 10배인 24%나 된다고 하니 한국민이 병역문제에 예민하게 나오는 게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속인주의와 속지주의 혼합으로 이중국적자가 된 해외한인의 신분이 100% 맘에 들지는 않더라도 ‘한민족의 자산’으로 보는 긍정적인 자세가 필요하다.
아무리 핏줄을 소중히 한다고 해도 자신의 의사와 전혀 관계없이 미국에서 태어났고 한국어가 어눌한 2세들에게 현행 법규를 마구잡이로 적용하는 것은 무리다. 성인이 된 2세들에게 책임 있는 선택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함이 마땅하다. 게다가 미국 시민권자를 한국정부가 임의로 징집할 경우 외교적 마찰로 비화할 소지도 있다.
병역법에 나타난 폐쇄성은 답답한 재외동포정책의 한 단면일 뿐이다. 한국에서는 참정권이나 이중국적 문제는 운을 떼기만 해도 ‘씨도 안 먹히는 말’인양 파르르 성을 낸다. 1995년 프랑스 파리 근교의 한 초등학교 운동장에 사람들이 줄지어 서 있는 모습이 지역신문에 실린 적이 있다. 장사진을 이룬 사람들은 프랑스에 살면서 알제리 대통령 선거에 한 표를 행사하려는 알제리 출신들이었다. 알제리 정부가 해외 교포들에게 참정권을 부여한 연유다.
한국정부도 해외한인에게 조건부 참정권 부여를 고려함직 하다. 병역 문제는 ‘병역필 동포’ 또는 ‘징집연령에 해당되지 36세 이상’으로 제한하면 봉합된다. 또 납세의무로 인한 갈등도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다. 참정권을 갖고 싶은 한인은 ‘일정금액을 일정기간 한국의 은행에 저축’하는 방식이 있다. 형식은 다르지만 경제에 도움을 준다는 점에서 납세에의 대체효과가 있다.
참정권까지는 아니더라도 이스라엘, 대만, 멕시코 등은 이중국적을 허용함으로써 해외거주 자국민들로부터 경제적 실익을 챙기고 있다. 교포들이 연간 수십 억 달러를 본국에 보내 경제 활성화에 기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교포의 역할을 인정하고 이들을 선용하고 있다.
하지만 이중국적자가 눈총을 받는 경우도 있다. 일례로 영국이나 남아공 국적을 갖고 짐바브웨 정부와 법조계에서 일하던 사람들은 2000년 6월 총선에서 민족주의 정서를 부채질한 무가베 대통령으로부터 ‘다리가 세 개’라는 조소를 견뎌야 했다. 네덜란드 프로축구단의 한 유고출신 선수는 1998년 파리 월드컵 유고-네덜란드 16강전에서, 네덜란드 시민권을 취득한 자신을 삐딱하게 보는 유고인들의 압력에 사력을 다해 ‘충성’을 보여야 했다.
이중국적은 이처럼 만만치 않은 이슈다. 한국에서는 해외한인의 역량을 선용하자는 레토릭이 심심하면 튀어나오지만 이를 실현하기 위한 한 방안으로서의 이중국적 허용에 대해서는 매우 부정적이다. 민심이 그러하니 입으로는 ‘글로벌’을 되뇌어도 정작 입법 추진에 있어서는 선뜻 총대를 매려는 국회의원을 찾기 어렵다.
물론 이중국적에 가로 놓여 있는 장애물을 도외시할 수는 없다. 한국정부가 이중국적을 허용할 경우 한국민보다 경제적 형편이 쳐지는 중국과 러시아 한인들이 대거 이동함으로써 유발될 사회 경제적 혼란을 무시할 수 없다. 중국 동포들의 정체성 변화로 한국-중국간 미묘한 갈등도 예상된다.
한국 내의 프리즘으로 보더라도 미국시민권을 노린 원정출산에 대한 거부감과 이중국적자를 ‘의무보다는 권리를 챙기려는 괘씸한 그룹’으로 분류하는 정서는 이 이슈를 대놓고 거론하기 힘들게 한다. 해외 한인들도 맹목적으로 이중국적을 외쳐서는 곤란하다. 자칫 의무는 하지 않고 권리만 누리겠다는 얌체족으로 비쳐질 수 있다.
이중국적은 해외한인이나 한국민 모두에 유익한 한민족 네트웍 건설의 일환으로 다뤄야 한다. 해외 한인을 인구비율로 따지면 이스라엘 다음으로 높고, 절대 인구수로 보더라도 중국, 이스라엘 다음이다. 이러한 현실은 이중국적 문제가 충분히 논의할만한 사안임을 웅변한다.
한국정부와 국민은 재외동포 정책이 해외한인들의 입맛에 맞춰 요리조리 재단된다는 인식을 자져서는 안 된다. 한인들도 눈앞의 편익만을 좇아 캠페인을 벌여서는 안 될 것이다. 전향적인 동포정책이 해외한인은 물론 한국의 국력 신장과 세계화에 공헌한다는 ‘윈-윈’ 차원에서 생각해야 할 것이다.

박 봉 현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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