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2004년 대선 전망 케리, 부시 꺾을 수 있나

2004-02-12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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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반 부시 열기 재선 걸림돌
신조 불분명한 케리 거품 가능성

존 케리 후보가 이번 주 버지니아와 테네시에서 압승을 거둠에 따라 민주당 대통령 예비 선거는 사실상 판가름났다. 작년 말 하워드 딘에 밀려 집을 잡혀 선거 자금을 마련하고 캠페인 매니저를 갈아치우는 등 허둥대던 때와는 상전벽해의 느낌이다. 과연 11월 본선에서 케리가 부시를 꺾고 대통령이 될 수 있을지 진단해 본다.


1988년 대통령 선거 초반에서 당시 부통령이던 아버지 부시 후보는 민주당의 두카키스에게 밀리고 있었다. 이 때 부시 진영에서 내보낸 것이 ‘윌리 호턴’ 광고다. 두카키스가 매사추세츠 주지사로 있었을 때 중범자로 복역 중인 죄수를 일시 풀어 주는 가석방 제도를 실시했는데 이 때 풀려난 윌리 호턴이란 죄수가 사람을 죽인 것이다.
“두카키스는 중범자나 풀어주는 리버럴”이란 부시 진영의 공세에 밀려 두카키스는 기를 펴지 못한 채 추락했다. 국방에 약하다는 유권자들의 인식을 바꾸기 위해 탱크에 올라타는 등 애를 썼으나 오히려 조롱감이 되고 말았다. TV토론장에서 “당신 아내가 강간당한 뒤 살해됐다면 어떻게 하겠느냐”는 질문을 받고 쩔쩔맨 것도 감표 요인이 됐다. 한때 대통령이 유력시되던 그는 지금 UCLA 교수로 평범한 하루를 보내고 있다.
그 두카키스가 매사추세츠 주지사로 출마했을 당시 부지사 러닝메이트가 바로 존 케리다. 부시 대통령 진영은 아버지 부시가 두카키스를 ‘뉴잉글랜드 리버럴’로 몰아 KO 시킨 것처럼 케리 역시 ‘두카키스의 아류’로 낙인찍어 잡겠다는 전략을 세워놓고 있다. 과연 이같은 방법이 먹혀들 것인가.
관측통들은 올 대선이 부시 진영 생각만큼 쉽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2004년은 1988년보다는 1992년에 가깝다는 것이 이들의 분석이다. 당시 아버지 부시는 이라크 전에서 완승하고도 신출내기 클린턴에게 당하고 말았다. 그 때도 경기는 회복되고 있었다. 공식적인 불황은 1990년 여름 시작돼 1991년 초에는 이미 끝났다. 단지 회복 속도가 워낙 느려 유권자들이 이를 느끼지 못했을 따름이다. 아버지 부시는 이라크 종전 후 90%가 넘었던 인기에도 불구 미 국민들에게 경기 회복에 대한 확신을 심어주는 실패, 낙마의 고배를 마셨다.
작년 말 미 GDP가 7.8% 성장하고 사담 후세인을 생포했을 때만 해도 ‘아들 부시의 백악관 재입성은 따 놓은 당상’이라는 이야기가 나돌았다. 그러나 불과 몇 달 되지 않아 존 케리가 돌풍을 일으키자 사정이 달라지고 있다. 일부 여론 조사에서는 케리가 50대 45로 부시를 능가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몸이 단 부시는 NBC와 한시간에 걸친 인터뷰를 통해 이라크 사태와 자신의 병역 기피 의혹에 대한 해명을 했으나 별로 신통한 반응을 얻지 못하고 있다. 민주당은 월남전에서 은성 훈장과 동성 훈장, ‘퍼플 하트’ 등 훈장이란 훈장은 모두 받은 케리가 후보로 사실상 확정되자 당시 텍사스와 앨라배마 주 방위군으로 근무하던 부시를 “병역 기피자”, “무단 이탈자”로 매도하며 미국판 ‘병풍’ 공세를 퍼붓고 있다.
그러나 정작 부시 진영의 골칫거리는 이라크와 경제다. 사담 체포 이후에도 후세인 잔당의 테러는 끊이지 않고 있으며 수그러들 조짐도 보이지 않고 있다. 거기다 오는 6월로 예정된 이라크 민정 이양이 순조롭게 이뤄지리라는 보장은 전혀 없다. 기원전 3,000년 전 메소포타미아 문명이 생긴 이래 민주주의라고는 해 본 경험이 없는 이라크 인들에게 자치 정부를 맡겨 잘 되리라 생각한다면 이는 환상이다.
시아파와 수니파, 틈만 나면 자치를 얻으려는 쿠르드족이 으르렁대는데다 미 세력 침투를 막으려는 민족주의자, 회교 근본주의자, 자살 특공대, 민주화에 반대하는 후세인 잔당 등 미국에 대한 증오로 똘똘 뭉친 세력들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미국의 의도를 좌절시키기 위해 신명을 다 바치고 있다.
미국 대선을 좌우하는 경제도 부시에게 유리하다고 만은 볼 수 없다. 부시는 대공황 때 대통령을 지낸 허버트 후버 이래 처음 취임 초보다 일자리가 줄어든 채 재선에 출마하는 대통령이다. 지난 3년 간 미국 내에서 300만 개에 가까운 일자리가 사라졌다. 이는 생산성 향상과 세계화, 기술 혁신 등 여러 요인으로 발생한 현상으로 부시의 책임이라 볼 수도 없고 장기적으로 나쁜 일도 아니지만 당장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장기 실업자에게 얘기해 봐야 소용없다.
공식 실업률은 5.6%지만 실제 고용 상황은 이보다 훨씬 나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정부에서는 일자리를 찾는 사람만 실업자로 치기 때문에 찾다 찾다 지쳐 아예 포기한 사람은 이에 해당되지 않는다. 거기다 잡을 구하지 못해 파트 타임이나 열악한 직종에 어쩔 수 없이 종사하고 있는 사람까지 치면 실질 실업률은 7%가 넘는다는 것이다.
거기다 부시는 대대적인 감세로 부유층에는 큰 혜택을 줬지만 중산층 이하는 별 덕을 보지 못했다. 감세는 자본 축적을 도와 경제 발전에 도움을 준다는 얘기 또한 지난 3년 간 임금이 거의 오르지 않은 미 근로자들에게는 먹혀들지 않는다. 부시의 현 상황은 민주당으로부터 ‘부자들만의 대통령’ ‘일자리를 수출한 대통령’이란 공격을 받기 딱 좋게 돼 있다.
또 하나 부시의 약점은 지난 번 대선에서 총 유효표에서 이기고도 백악관을 내준 민주당원들의 부시에 대한 증오다. 이들은 이번 예선에서 케리를 찍은 이유로 “본선에서 부시를 꺾을 수 있을 것 같아서”를 제일 먼저 들었다. 최근 여론 조사에 따르면 11월 선거에서 ‘부시를 반드시 떨어 뜨려야겠다’는 유권자는 45%로 ‘반드시 부시를 찍겠다’는 37%를 능가했다.
그렇다고 케리 당선을 안심해도 좋은 것은 아니다. 케리 돌풍은 케리 자체가 인간적인 매력이나 카리스마가 있어서가 아니라 반 부시 세력 결집의 결과다. 케리가 진정으로 좋아서가 아니라 부시에게 이길 것 같아 준 표기 때문에 약점이 드러나거나 본선에서의 승산이 희박해지면 안개처럼 사라질 수도 있다.
케리의 어눌한 말솜씨도 문제지만 더 큰 약점은 신조가 뭔지 불분명할 때가 많다는 점이다. 그는 제대후 반전 재향 군인 협회의 리더로 활동하며 복무 기간 받은 훈장을 내동댕이 쳤다. 그러다 나중에 정계에 입문해서는 이를 다시 주워 자신의 집무실에 걸어 두고 있다.
1990년 걸프전 때는 반대표를 던졌다가 2003년 걸프 전 때는 찬성표를 던졌다. 그러다 미군 지원비로 800억 달러를 배정하자 다시 반대표를 던졌다. 또 말로는 동성연애자의 결혼에 반대한다고 하면서 이를 법으로 금지하는 데는 반대하고 있다. 매사추세츠 대법원이 미국민 대다수가 반대하는 동성간 결혼을 인정하는 바람에 이 문제가 이번 대선에서 그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곰에게 쫓기던 2명의 사냥꾼 중 한 명이 동료보다 앞질러 가자 뒤쳐진 친구가 “뛰어 봐야 어차피 곰보다 느린 데 왜 애써서 앞서 가느냐”고 묻자 “목숨을 구하려면 당신보다 빠르면 되지 곰보다 빠를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는 우스개 소리가 있다. 부시도 케리도 발목을 잡을 악재는 산적해 있다. 누가 과연 곰의 추격을 피해 백악관에 들어앉을 지는 두고 봐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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