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선거의 해이다. 이 때면 현직 대통령이 정치 스펙트럼의 중간으로 이동하는 것이 보통이다. 지난 1996년 재선에 출마한 빌 클린턴 전 대통령도 큰 정부 시대는 끝났다고 선언함으로써 우파 쪽으로 다가갔다.
그런데 부시는 이런 기대를 저버렸다. 국정연설에서 부시는 보수주의를 줄기차게 밀고 나갔다. 이라크 침공 및 점령에서부터 수십억 달러의 예산 적자를 초래한 세금 감면에 이르기까지 부시는 초지일관 뜻을 굽히지 않았다. 부시의 메시지는 한마디로 “내가 보스이다. 무슨 일이든 겁나지 않는다. 나와 함께 해달라”는 것이었다. 사실 여부를 따지지 않고 듣는다면 그 연설은 꽤 호소력이 있다.
이라크 문제에 있어서 그는 사담 후세인 제거에 초점을 맞췄다. 하지만 무기사찰단이 핵, 화학, 생물 무기들을 찾아내는 데 실패했다는 사실은 언급하지 않았다. 지난해 국정연설에서 부시는 후세인이 엄청난 양의 생물, 화학무기 생산능력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미정보당국이 추정하고 있다고 말했었다. 이번 국정연설에서 부시는 미국이 남의 허락을 받으면서 국가 안보를 지킬 생각은 추호도 없다고 말했다. 지당한 말이다. 하지만 미국이 자국의 안전을 지키면서 허락을 구했던 적은 없었고 그래서도 안된다. 문제는 이라크에 대한 선제 공격이 미국의 국가방위를 위해 최선책이었는가 하는 것이다.
부시의 국정연설은 재선 캠페인을 위한 비공식적 킥오프였다. 그는 지난 2000년 캠페인 때 내세웠던 온정적 보수주의를 다시 들고 나왔다. 2000년에는 빈곤층 어린이들을 위한 교육 개혁이 그에 해당되었다면 2004년에는 교육 뿐 아니라 동성애자 결혼문제 까지를 포함하게 되었다.
도심의 갱 전쟁이나 주·지방정부들이 테러와의 전쟁 와중에 겪는 극심한 재정적 부담 따위가 부시의 연설에서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는 것은 유감이다. 교육, 의료혜택, 교도소 등에 관해 논의할 만한 제안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런 이슈들은 이번 국정연설에서 핵심이 아니었다.
부시는 테러리즘 쳐부수고, 세금 없애고, 전통적 가치 살리는 대통령으로 자신을 내세웠다. 사실 여부를 따지면 달라질 지 모르겠지만 일단 재선을 위해서는 영리한 전략이다.
LA 타임스 사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