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석규 옹이 부인 김상숙 할머니와 함께 재외 유공 동포 표창장을 설명하고 있다.
80대 중반의 연로함에도 불구하고 필라 한인 사회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과시하고 있는 황석
규(85 전 필라 노인회장)옹이 한국 외교 통상부장관이 수여하는 재외 유공 동포 표창을 수상해 또 다시 노익장을 과시했다.
황석규 옹은 지난 주뉴욕 총영사관에서 열린 재외 유공 동포 포상식에 부인 김상숙 할머니와 함께 참석했다. 작년 가을 버스 정류장에서 교통 사고로 엉덩이뼈에 금이 가는 중상을 당했던 황 옹은 이날 목발을 집고 고형문(82)필라 노인회 전 이사장, 문종운(84)노인회 이사 등의 축하객과 함께 총영사관에 도착해 조원일 총영사로부터 표창장을 받았다.
황석규 옹은 지난 8일 전화 통화에서 움직임이 불편해 도저히 시상식장에 갈 형편이 되지 않았으나 총영사관에 건의할 사항도 있어서 다녀왔다며 기뻐했다. 황 옹은 이날 영사관에 필라 지역 순회 영사 업무 활성화, 6. 25 참전 기념일에 열리는 미국 참전 용사 위로의 밤 격려 등을 제안해 긍정적인 답변을 받았다.
황석규 옹이 재외 동포 유공 표창을 받은 표면적인 이유는 민주주의와 조국애 고양, 필라 한인회관 건립 모금 운동 공헌 등이지만 실제적으로 그는 20여 년 간 필라에서 이민 생활 동안 다양한 활동을 펼치며 주목을 받아왔다.
황 옹은 보성전문학교(현 고려대)에서 축구 선수로 활약하면서 이철승 전 국회의원(자유민주민족 회의 대표) 등과 함께 법학을 전공했다. 일본 군대에 징병됐다가 해방 후 돌아온 황 옹은 군정청 등에서 일하다가 육사 7기 생으로 임관해 1959년 대령으로 예편했다. 그는 5. 16 혁명 뒤 경기도 양주 군수, 산림청장, 원호 장학회 총무 이사 등을 역임했다. 그는 당시 부정 부패를 보고 참을 수 없어 공직에서 자진 사퇴했다고 말했다.
1983년 필라에 이민 온 황 옹은 한국전 참전 동지회 창설에 앞장선 것을 시작으로 한인 사회 활동에 적극 관여하기 시작했다. 그는 노인회장에 취임하면서 당시 노인회관 건립 기금 전용 문제가 불거지자 이를 파헤치고 P 전 회장과 법정 소송을 불사하는 추진력을 과시했다.
2002년 들어서는 타계한 L 목사의 광복절 기념식장에서의 김정일 만세 삼창 발언을 추궁했으며 정미호 필라 한인회장에 대한 퇴진 음모를 앞장서 척결했다. 또 황 옹은 70~80대 노인 10여명과 함께 한인 상가를 순회하며 한인회관 건립 기금 모금 운동을 벌이는 등 나이와 관계없는 왕성한 활동을 펼쳐 왔다.
현재 자유민주민족 회의 필라 지부 회장을 맡고 있는 황석규 옹은 극단적인 반공주의자 겸 보수주의자로 자처하고 있다.
<홍진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