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지영(40)씨가 한인 타운의 아파트에 둥지를 틀고 새 삶을 시작한 지도 이제 2년째 접어든다. 미국에서의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느라 아침 일찍 출근하고 밤늦게 들어와서일까. 그녀는 바로 얼마 전까지 옆집에 누가 살고 있는 지 잘 알지 못했다.
12월 들어선 어느 날 누군가가 그녀의 아파트 방문을 두드렸다. 그녀 또래의 여성이 새로 이사를 들어왔다며 시루떡을 건네준다. 이 각박한 미국 생활에 이사를 왔다고 떡을 돌리다니. 이웃집 여인의 돌연한 방문은 그녀에게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또 한 번은 옆집 사는 유학생 이웃이 와인 병마개 따개를 빌려달라며 그녀의 문을 두드렸다. 와인 병따개 빌려준 게 뭐 큰 빚이라고 그는 다음 날 보기에도 먹음직스러운 케이크 한 조각을 사다주었다.
한 주 전 월요일 아침에는 회사에 가려고 차에 시동을 거는데 어제까지도 부릉부릉 잘만 달리던 그녀의 차가 묵묵부답이었다. 추운 겨울에 땀방울까지 흘려가며 차와 씨름을 하고 있을 때 바로 옆 주차 공간에서 차를 빼려던 옆집 신사가 도움주기를 자청했다. 점프 케이블을 이용해 배터리를 충전하고 무사히 제 시간 안에 회사에 출근할 수 있었던 그녀는 혼자 무인도에 살고 있지 않음을 감사했다.
아주 작은 이웃간의 오고감은 때로 혼자 회색 담장 안에 갇혀 있다고 느끼던 그녀의 인식에 많은 변화를 주었다. 시루떡과 케이크를 얻어먹고 자동차 충전을 받은 후 그냥 가만히 있지 못하는 것은 유난히도 이웃 잘 챙기던 어머니를 둔 덕분이다.
그녀는 어린 시절 어머니에게서 보고 자란 대로 연말을 맞아 작은 도움을 주었던 이웃을 초대하는 블럭 파티(Block Party)를 계획했다.
우선 그녀는 날짜와 시간을 정해 초대장을 보냈다. 자주 하는 것도 아닌데 좀 더 기억에 남게 하기 위해 파티 재료 파는 곳에 가서 벌크로 된 초대장을 구입한 그녀는 간단한 초대의 말을 적어 넣었다.
파티를 갖기로 한 금요일 저녁, 하루 일과를 마치고 평소 잘 가던 중국집에 주문한 음식을 픽업했다.
물론 손수 요리를 했더라면 더 좋았겠지만 바쁜 일과 때문에 그럴 여력은 없었다. 후식으로는 떡으로 만든 케이크를 주문해 두었다. 전날 미리 마켓에 들러 마실 것과 과일을 사다 놓은 덕에 파티 준비는 재빨리 마쳐졌다.
7시가 되자 이웃들이 하나 둘 문을 열기 시작했다. 마실 것을 준비해주며 여러 나이 또래의 이웃들이 한 자리에 모인 것이 불편하지 않도록 배려하는 그녀의 모습은 아름다웠다. “요리 직접 하지 못해 죄송해요” 하며 송구스러워 하는 그녀에게 이웃들은 오히려 이런 기회를 먼저 제공해 준 것에 대한 고마움을 표시했다.
음식과 함께 그들은 자연스레 이웃에 관한 대화를 나눈다. 어린 시절 옆집 살던 아저씨가 만들어주었던 나무 칼 장난감과 그것을 함께 가지고 놀던 철수. 뽑기를 함께 해 먹던 이웃집 언니, 스케이트장에 데려가주었던 이웃집 형. 솜씨 좋고 인심 좋은 한 옆집 아주머니는 콩나물 무침이 됐든 잡채가 됐든 항상 저녁 반찬거리를 넉넉히 만들어 한 대접씩 가져다주기도 했었다.
돌이켜 보니 우리들에게 있어 이웃의 의미는 결코 작지 않았다. 항상 우리에게 정겹고 따뜻한 기억으로 남아있는 이웃은 지금쯤 과연 어디서 무얼 하고 있을까.
그녀가 먼저 마음 문을 열어 초대함으로 서로 알고 지내게 된 이웃들은 앞으로도 자주 이런 시간을 마련하자는 데 만장일치로 동의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동지 떡이든, 크리스마스 케이크든 함께 나눔으로 그들은 더욱 풍성한 새해를 맞이할 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