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와인 테이스팅

2003-12-03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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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 연시를 맞아 가족 친지간의 모임이 많아지면서 그냥 만나서 먹고 마시고 수다떨다 헤어지는 것보다 좀 더 새로운 만남의 자리를 마련하고 싶을 때가 있다. 이 기회에 와인 테이스팅을 하면서 와인에 대해 좀 더 배우고 알아가는 즐거움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우선 와인 테이스팅을 쉽게 생각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마치 외국인이 장맛을 보면서, 이것은 된장, 이것은 고추장, 이것은 간장.. 하고 배우듯이 그렇게 맛을 봐가면서 그 맛을 기억하고 익힌다고 생각하면 된다. 와인에는 인간이 느낄 수 있는 수백, 수천가지의 맛이 다 포함되어 있다고 하지만, 처음 시작하는 사람들을 위해 신맛(acidity), 떫은맛(tannin), 그리고 오크통 향을 느낄 수 있는 테이스팅 방법을 소개한다.

와인에 있어서 신맛(acidity), 혹은 산도라는 말은 맛을 표현할 때 가장 자주 쓰이는 단어 중 하나이다. 신맛이 강한 와인과 그렇지 않은 와인을 비교하기 위해서는 오크향이 거의 없는 이탈리아산 피노 그리지오(Pinot Grigio) 한병과 오크향이 진한 캘리포니아나 호주산 샤도네(Chardonnay) 한 병을 준비하여 맛을 비교해 보는 것이 도움이 된다.


여러 종류의 백포도주 중 피노 그리지오는 가장 가볍고 신맛이 강하여 더운 여름철 낮에 마시기에 좋은 와인이고, 샤도네, 그중에서도 오크통 향을 많이 가미한 캘리포니아와 호주산 샤도네는 바디가 많이 느껴지고 신맛이 덜한 와인이기 때문이다. 피노 그리지오는 병당 10달러 미만의 가격에서, 샤도네는 그보다 3~5달러 더 비싼 가격에 구입할 수 있을 것이다. 피노 그리지오는 만들어서 금방 마시는 와인이기 때문에 요즘 2002년산이 많고, 샤도네는 약1년간 숙성된 후 출시되기 때문에 2001년산이 흔하다.

같은 백포도주인데도 어쩌면 이렇게 맛과 향이 다른지를 느끼고 모인 사람들이 서로 의견을 나누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시간이 될 것이다. 피노 그리지오를 못 구했을 경우, 뉴질랜드산 소비뇽 블랑(Sauvignon Blanc) 중 오크통 숙성을 하지 않은 것을 대신 사용해도 된다. 처음부터 신맛을 구분해내지 못하더라도 가볍고 상쾌한 맛의 백포도주와 좀 더 묵직하고 깊은 맛의 백포도주를 구분할 수 있다면 테이스팅은 성공적이다.

피노 그리지오와 샤도네의 맛을 비교하면서 느꼈던 둘의 다른 점 중 어떤 것이 산도였는지를 더 확실히 알기 위해서는 오크통 향이 더해졌을 때 맛이 어떻게 변하는지를 알아야 한다. 오크통 향을 구분하기 위해서는 같은 캘리포니아산 와인 중 오크통 향이 강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 두가지를 구입해서 비교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이 둘의 비교는 똑같은 지역에서 같은 포도품종으로 빚은 와인이기 때문에 오크통 향을 확연히 구분하기에 좋다.

나파 밸리의 걸기치 힐(Grgich Hill)이나 프로그스 맆(Frog’s Leap)이 오크 향이 덜 들어간 샤도네를 만들고, 소노마의 페라리-카라노(Ferrari-Carano) 샤도네는 오크 향이 강한 편이다. 이 와인들은 모두 가격이 20달러 가까이 하는 비싼 와인인데, 코스코, 코스트 플러스 등의 마켓과 로컬 와인 전문샵에서 구입할 수 있다. 이 테이스팅을 통해서 오크 향을 확실히 구분한 후, 먼저 했던 산도를 비교하는 테이스팅을 한 번 더 하면 신맛을 좀 더 잘 구분할 수 있을 것이다.

테이스팅이 끝난 후, 피노 그리지오, 오크 향이 적은 샤도네, 오크 향이 강한 샤도네를 각각 똑같은 색과 크기의 종이봉투(와인 판매시 넣어서 주는 브라운 백)에 싸서 레이블을 가린 다음, 블라인드 테이스팅을 통해서 조금 전 맛보았던 와인들을 구별해내는 것도 매우 즐거운 시간이 될 수 있겠다.

보통 태닌(tannin)이라고 부르는 호두 속껍질 같은 떫은맛을 구분하기 위해서는 요즘 출시되어 구하기 쉬운 보졸레 누보 한병과 캘리포니아나 호주산 카버네 소비뇽(Cabernet Sauvignon) 한 병을 구입해서 맛을 비교해 보는 것이 좋다. 보졸레 누보는 8~10달러의 가격에 한인타운 마켓을 비롯 어디서나 구입할 수 있고, 캘리포니아와 호주산 카버네 소비뇽은 10~15달러의 가격에 괜찮은 것을 구입할 수 있다. ‘투벅척’이라고 불리우는 찰스 쇼의 카버네 소비뇽은 태닌이 너무 적게 느껴지기 때문에 이 테이스팅에는 적합하지 않다.

피노 그리지오와 샤도네를 비교했을 때처럼, 떫은맛을 가려내어 구분할 수 없었다고 하더라도 가볍고 과일향이 강한 적포도주와 묵직하고 떫은맛이 강한 적포도주를 구분할 수 있었다면 성공적인 테이스팅이다. 나중에 또 이 둘을 봉지에 넣고 블라인드 테이스팅을 하는 것도 재미있겠지만, 눈썰미가 있는 사람은 금방 두 병의 모양이 다르게 생긴 것을 보고 쉽게 보졸레 누보와 카버네를 구분해낼 수 있을 것이다. <최선명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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