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이면 변호사 생활 20년째로 접어든다. 직업상 줄기차게 많이 받는 질문 두 가지가 있는데, 첫째는 무엇을 전문으로 하느냐는 질문이고 둘째는 언제 가장 보람을 느끼냐는 질문이다.
별도의 전문 코스가 있는 의사와는 달리 변호사 업무는 주법상 ‘전문’이란 단어를 쓰는 것이 금지돼 있어 고집스럽게 그 단어를 회피해왔기 때문에 첫째 질문은 당연한 것이고, 둘째 질문에 대한 답은 이제껏 날 믿고 상해법이나 형법 이외의 문제들을 맡겨주신 분들께는 송구스럽지만 형사문제다.
그도 그럴 것이 형사문제를 의뢰할 땐 체면 몰수하고 자신의 부끄러운 실수를 내놓고 흔적을 없애 달라고 졸랐으니 말이다. 그런데 한번도 장담을 안 했지만 날 신뢰하는 그 마음을 저버리지 않도록 기대치보다 좋은 결과가 나왔을 때 나 또한 의뢰인 이상으로 기뻤다.
한번은 C씨가 몇 번 있는 직장의 술 상무 노릇을 차마 거절할 수가 없어 늦게 귀가하는 날이 생겼다. 그런데 몇 년 전 혼쭐이 난 사건이 생겨 변호사 사무실을 안방 드나들 듯이 한 것이다. C씨의 경우는 손님한테 확실한 서비스를 해주려다가 형사재판까지 끌고 간 케이스다. 식당에서 반주를 곁들여 식사를 하고 손님을 호텔까지 데려다주었는데 그 손님이 뭘 부탁을 해서 편의점에 가다가 사고를 냈다.
그런데 음주운전 상태에서 사고를 내서 형사처벌은 처벌대로 받고 그 사고 때문에 얼마나 많이 불려 다녔는지 모른다. 사고로 인해 상대방이 많이 다쳤기 때문에 일년 반이 걸린 케이스였다. 상대방이 제소를 해 법정밖 증언 (Deposition) 과정, 즉 소송제기 후 법원 속기사 입회 하에 원고 측 변호사가 질문을 하는 절차를 여러 번 거쳤다.
설상가상으로 집과 직장에서 멀리 떨어진 법정에 다니느라고 십년은 늙은 것 같다고 했다. 상대측에선 C씨가 낸 사고가 근무시간의 연장이었다고 주장하여 C씨가 일하던 회사에서 원고에게 손해배상을 하라는 판결을 법원에서 받았다.
매년 이맘 때면 생각나는 K씨의 경우는 구치소에서 급히 연락이 와서 만난 케이스였다. 그는 LA 다운타운의 꽤 잘 돼는 회사의 세일즈맨이었고 그의 임무는 손님접대였기 때문에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직업성격상 손님을 비행장에서 픽업해 바(Bar)에 가서 같이 술을 마셨고 저녁 대접하러 가는 도중에 교통사고를 냈다. 혈중알콜농도는 0.09%였다. 이 사고로 손님은 물론 동승한 손님의 친구까지 많이 다쳤다. 그때 회사는 업무 중 사고이므로 그 손님과 동승인에게 당연히 보상을 해줬어야 한다.
대신 책임지는 의무(Vicarious Liability)의 이론에 바탕을 둔 변론이라 하겠다. 불행히도 그 회사의 보험은 부실했고 그 회사 간부들은 책임회피에 급급했다. 그런데 검사측에선 C씨가 전에 여러 번 DUI로 걸린 적이 있고 위험의 가능성을 고려하지 않고 음주운전을 해서 손님이나 제 삼자가 다쳤다고 주장해서 처벌적 배상(Punitive Damages)까지 물었다.
형법과 교통사고법이 섞인 꽤 까다로운 케이스였는데 최선의 길을 갈 수 없어 차선책을 마련하여 회사 자산으로 마무리지어졌다. 그런 와중에서도 K씨는 결과에 고맙다며 절을 몇 번씩 했었다. 그런데 그것이 계기가 되서 전화위복으로 큰 부자가 됐으니 인생만사 새옹지마가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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