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정현 칼럼]
▶ 박정현<가주정부 전신시스템 경영자>
왜 추수감사절 때가 오면 서부영화를 총망라 방영할까? 지난 일요일부터 AMC 채널과 TCM 채널이 마련한 서부영화 특집 때문에 틈만 있으면 TV앞에 앉아 죤 웨인 등의 서부활극을 보면서 우리 아이가 무심코 던진 질문이었다. 우리 식구는 별로 TV를 보지 않지만 서부극만 나왔다하면 이미 몇번 본 거라도 순식간에 빠져버리기 일쑤이기 때문이다.
글세... 하다가 순간 나는 외쳤다. 그건 미국의 서부가 지상최고의 개척지였기 때문이지! 개척민 최대의 명절인 추수감사절에 그보다 더 좋은 특집이 있겠니? 그렇게 말하고보니 너무 그럴듯해서 나는 영어로도 한번 적어보고 싶다. The West is the greatest frontier on earth! 더 극적인 것 같다. 그 서부를 배경으로 한 갖가지 개척민들의 이야기를 다루는 서부영화들이 증언한다. 사실 나는 빅 컨츄리 (Big Country)나, 리오 부라보(Rio Bravo), 엘도라도 (El Dorado) 등 유명한 서부영화 비데오를 대부분 다 가지고 있는데 볼 적마다 그런 생각을 한다.
왜 서부영화를 좋아하는가. 그 답은 각자가 실지로 보아야하는 하나하나의 장면 속에 담겨있다. 설명이 불가능하지만 굳이 해보자면 이렇다. 서부영화를 보면 언제나 두드러지는 두 가지가 있는데, 첫째는 그 광활한 대지의 위대함이고, 둘째는 개척민들의 그 엄청난 고난과 용기이다. 무법천지 서부에서는 하루하루가 목숨을 건 자연과 인간과의 사투(死投)라 해도 과장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전 재산을 포장마차에 싣고 말(馬)의 짐을 덜기 위해 대부분은 걸어서 서부로 나아갔다. 그 막막한 벌판에서 여름의 태양은 얼마나 무자비하게 뜨거웠으며 거울의 추위는 얼마나 혹독했을까. 극심한 눈보라가 칠 때면 바로 한치 앞의 집을 못찾아서 얼어죽거나, 철도와 마을이 눈에 꽁꽁 파묻히면 몇 주일 동안이나 공급선이 끊어져 하루에 감자하나 빵 한조각으로 연명하는 적도 있었다한다. 그뿐인가. 무수한 천재(天災)말고도 그들에게는 원주민들과의 끊임없는 목숨의 줄다리기도 있었다.
이 모든 역경도 더 푸른 초원 더 넓은 세상 - 즉 서부로 가고자하는 개척민들의 꿈을 꺾을 수 없었다. 그들은 언제나 서쪽을 보며 꿈을 먹고살며 역경을 이겨냈다. 그 힘들고 오랜 여정에 늙고 병들어 미국 중부도 채 못 미친 채 주저앉거나 죽어간 사람들도 많았다. 그 당시 개척민들의 놀라운 이야기는 한 두권의 책으로도 다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저 유명한 ‘언덕 위의 작은 집 (The Little House on the Prairie)’시리즈의 저자 로라 잉갈스 (Laura Ingals)는 장장 아홉 권이나 썼는지도 모른다. 한 두권만 읽어도 대충 감이 잡히겠지만...
그 당시 개척민들은 단 5마일이란 지금으로서는 엎어지면 코 닿는 단거리에 있는 집으로 가기 위해 엄동설한의 날씨에는 목숨을 걸기도 했다. 지금은 난방을 한 자동차를 타고 단숨에 몇 분이면 눈 깜짝않고 갈 수 있는 거리를. 그들이 한평생을 걸려 이루지 못하기도한 대륙횡단을 지금은 반나절이면 할 수 있다. 불과 한 백 여년만의 일이다. 지금 이 세기를 사는 우리가 그들에게 진 빚은 얼마나 될까...
이 엄청난 자연과 선구자들의 역사의 자취를 눈으로 보여주는 것이 서부 엉화이다. 영화중의 영화, 지상 최대의 개척사... 이 세상 어느 다른 나라가 흉내낼 수 있으리.
그러니 미국 역대 대통령들이 백악관 영화실에서 가장 즐겨보는 영화중 서부영화가 단연 으뜸이라는 게 당연하게 들린다. 광활하고 웅장한 서부의 자연은 유럽인들이 미국에서 가장 탐내는 것이기도 하다. 이태리는 스파게티 웨스턴이란 변종 서부영화를 한동안 불티나게 만들어 보았고, 냉전시대 쏘련의 지도자 흐루시쵸프도 서부영화를 즐겨 보았다한다. 그는 서부 개척사 (How the West Was Won)란 영화를 보며 불모의 시베리아 개척의 꿈을 꾸어보았지만 이루지 못했다.
많은 사람들이 추수 감사절을 맞아 감사를 드리자고 한다. 좋은 말이다. 우리는 감사할 게 너무 많다. 그중에 잊어서 안될 것 내지 알아야 할 것은 우리를 앞서간 개척민들의 피땀어린 노고와, 후세자로서 그 수확을 누리고 사는 우리의 행운이며, 또 그것에 대한 겸허한 자세와 감사의 마음이다. 그러자면 이 위대한 대지와 그위에 점철된 선구자들의 발자취를 알아보아야 할 것이다. 우리도 누구나 이 땅에 일종의 개척민으로 오지 않았는가 - 낯설고 물설은 새로운 땅에서 새로운 삶을 개척하고자!
이 은총받은 대륙에 살며 그 위대한 개척사를 한번도 답사하거나 알아보지 않고 그저 미국은 돈벌이 좋은 나라, 살기 좋은 나라, 심지어는 재미없는 천국이라고만 알며 사는 이들이 많다. 그것은 반 조각 인생을 사는 것처럼 가난한 생각이며 수박 겉 핥기로 사는 것이 아닐까. 일년에 단 한 주일이라도, 적어도 추수감사절 주에는 개척민들의 내력을 알아보자. 서부는 아직도 광활하다. 대륙의 모험담은 예나 지금이나 우리를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