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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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면조와 파티

2003-11-29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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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성의 창]

▶ 박성희<컨설턴트>


매년 11월이되면 어느 가게를 가든 풍성하게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칠면조를 볼 수가있다. 특히 그를 요리할때 쓰이는 각종 양념들의 들러리는 미국인들의 가장 큰 명절임을 과시하고 있어 나의 마음도 같이 들뜨는 것은 추석때쯤이면 괜시리 송편을 그리면서 옛정을 그리워하는 것과 같으리.

학창시절 어느 책에서 칠면조 요리의 만찬을 읽은적이있다. 처음에는 칠면조를 먹는다는 것도 신기하였지만 맛이 어떨까 굉장히 궁금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궁금증은 나의 상상의 세계에서 훨훨 날개를 타고 아주 황홀한 경지에 도달하여 나름대로의 맛을 내고있었다. 처음 Thanksgiving을 맞던해 지도교수(그 당시는 총각이었음)가 Thanksgiving party를 주선을하여 손수 칠면조를 굽을터이니 각자 음식 한그릇씩만 가져오라는 것이었다. 정말로 뜻밖이기도 하지만 은근히 칠면조에 대한 동경과 파티라는 단어에 너무도 감격하였다. 그러나 감격도 잠깐! 어떤 옷을 입어야되는지 부터가 고민이 되었다. 이브닝 드레스를 사야하는 것인지 머리는 어떻게하여야 하는지. 몇일의 고민 끝에 결국은 거울앞에서 이옷 저옷을 갈아 입어보면서 가장 좋은 옷으로 낙찰을 보고 머리모양 역시 긴머리 어깨위로 빗어넘기기로 했다.

그러나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이 없다고 영화속의 파티와는 너무나도 거리가 멀었다. 교수댁에 도착하는 순간 나의 얼굴이 확확 달아올랐다. 다들 평소와 같은 옷차림이었다. 다들 내가 이쁘다고 칭찬을 하였지만 나는 정말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브닝 드레스를 안 사입은것이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모랐다. 드레스를 입고 왔다면하는 생각에 미치자 창피하여 다시 나의 얼굴이 홍당무가 되면서 숨이 막히는것 같았다. 분명 나의 자존심과 영화의 화려한 장면들을 막연히 나의 삶속에 묻고있는 탓이리라. 하지만 이러한 순간도 잠깐, 칠면조구이 냄새가 나의 말초신경을 자극하고있어 갑자기 어지러울 정도로 시장기를 느끼면서 책속 상상의 맛을 되찾으려 노력하였다.

나의 상상속에서만 존재한 맛을 실제로 먹어본다니 정말 꿈만 같았다. 그러나 오! 나의 실망! 얼마나 기대했던 칠면조인데! 나의 입맛하고는 너무나 거리가 멀었다. 그냥 꿈속 맛만 즐길걸! 하지만 어쩌리 로마엘가면 로마법을 따르라했듯이 이 미국의 풍습인 것을. 그후에도 나는 칠면조 대한 나의 동경을 저버릴 수가 없어 몇번 더 시도를 하여 보았으나 매번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긴세월을 지내다보니 모든 맛은 손끝맛임을 알았으며 요즘 이맘때가되면 은근히 Thanksgiving만찬을 기다리는 습관이 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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