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세계가 반한 호주의 와인

2003-11-26 (수)
크게 작게

1970년대와 1980년대 초가 미국 와인이 세계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때라면, 1990년대는 호주가 세계 와인업계에 신선한 충격을 선사하며 일대 혁신을 일으킨 시기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호주에서 생산된 진하고 강한 맛의 적포도주와 과일향이 풍부한 백포도주가 다른 나라의 포도주와는 경쟁이 안 될 정도의 저렴한 가격에 밀물처럼 몰려와 마켓의 선반을 차지하고 있다.

미국으로 수출되는 호주 와인의 브랜드는 린데만스(Lindemans), 로즈마운트 에스테잇(Rosemount Estate), 블랙 오팔(Black Opal), 제이콥스 크릭(Jacob’s Creek), 하디스(Hardy’s) 순으로 물량이 많은데, 1989년에는 미국에 100만 케이스가 수출되었던 것이 2000년에 와서는 700만 케이스가 수출되었을 정도로 그 양이 해마다 크게 늘고 있다.

호주 와인의 특성에 대해서 알아보려면 호주의 지형상 특성을 간과할 수 없다. 그것은 호주가 다른 모든 대륙에서 뚝 떨어져 있다는 것이고, 남아공과는 달리 다른 나라나 대륙으로 가기 위해 꼭 거쳐야 하는 위치도 아니고, 북미나 남미처럼 유럽 국가들에 의해 오래전부터 식민지화 되지도 않았다
는 점이다. 그러므로 약 200년의 호주 와인의 역사를 들춰볼 때, 호주는 고립되어 외부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은 채 호주인들의 입맛에 맞는 와인만을 만들어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00년이라는 세월은 200년을 갓 넘은 호주의 역사의 길이에 비해서 매우 긴 시간을 뜻하며, 호주에 사람이 이주해오기 시작한 때부터 포도 재배가 시작되었음을 알려준다.


처음에는 현재 시드니에서 포도재배를 했지만, 습한 기온이 포도 재배에 적합하지 않아서 곧 좀 더 건조한 지역을 찾기 시작했고, 그래서 발견된 곳이 헌터 밸리(Hunter Valley)이다. 현재 헌터 밸리는 호주를 대표하는 와인 생산 지역으로 전 세계에 알려진 지역이 되었다.

그렇지만 호주의 와인 산업은 헌터 밸리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다른 어느 나라보다도 호주는 와인 생산지역이 전국 곳곳에 널리 분포되어 있고, 항상 새로운 지역을 개발하려는 노력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노력은 특별히 호주의 ‘빅 4’라고 불리우는 거대한 기업들이 투자를 아끼지 않기 때문인데, 빅4의 와인 생산량은 호주의 전체 생산량의 약 80%에 달한다.

이들 빅4는 펜폴드(Penfold), 린데만(Lindeman), 시뷰(Seaview) 등의 브랜드를 소유한 사우스콥(Southcorp); 올랜도(Orlando), 제이콥스 크릭, 블랙 오팔 등을 소유한 프랑스인 소유의 페르노 리카드(Pernod Ricard); 하디스, 바로사 밸리 에스테잇, 문다 브룩 등을 소유한 BRL 하디(Hardy); 그리고 울프 블래스(Wolf Blass), 엘로우 글렌, 밀다라 등을 소유한 포스터스(Fosters) 이다. 프랑스에서는 지역과 와이너리에 따라 생산하는 포도주의 양과 질이 뚜렷이 구분되는데, 호주에서는 이 4사가 질과 양의 구분 없이 값 싼 와인부터 최고급 와인까지 모두 생산하고 있다. 예를 들어서 사우스콥의 펜폴드 브랜드 와인은 박스에 담겨서 나오는 값싼 하급 와인부터, 와인 스펙테이터지로부터 올해의 와인으로 뽑히며 세계적인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그랑쥬(Grange) 와인까지, 생산하는 와인의 가격과 질의 차이가 크다.

<주요 와인 생산지역>

호주의 주요 와인 생산지역은 뉴 사우스 웨일즈(N.S.W) 주에 있는 그리피스, 헌터 밸리, 머지(Mudgee)로. 이 중 헌터밸리는 세미용 포도품종을 이용해서 만든 백포도주로 유명하다. 호주 남동부 멜버른 근처에 위치하며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빅토리아주에는 호주에서 두번째로 많은 포도원과 양조장이 있는데, 기후와 토양이 유럽과 비슷하여 질 좋은 적포도주, 백포도주, 스파클링 와인, 포트를 생산하고 있다. 그레이트 웨스턴, 야라밸리, 굴번 밸리 등이 잘 알려진 와인 생산 지역이고, 굴번 밸리의 샤토 타빌크(Chateau Tahbilk)에는 빅토리아주에서 가장 오래된 140년된 쉬라즈 포도나무가 있다.

남부 지역의 아델레이드는 명실공히 호주의 와인 생산 중심지로 자리 잡은지 오래이다. 이 지역에서 호주 전체 와인의 60%가 생산되는데, 바로사 밸리, 클레어 밸리, 쿠나와라 등의 지역은 쉬라즈, 리즐링 등 품종의 최고급 와인이 생산되는 곳으로 유명하다.

호주에서 생산되는 포도의 품종 중 가장 유명한 것은 쉬라즈(Shiraz)이다. 프랑스의 론 밸리에서는 시라(Syrah)라고 불리는데, 후추와 같이 매운 맛이 있고, 강한 맛과 향을 자랑하는 진한 적포도주이다. 호주 전역에 걸쳐서 6만2,000 에이커에 달하는 가장 넓은 지역에 쉬라즈 품종을 재배하고 있다. 이는 호주 전체 포도재배 지역의 1/4에 달하는 크기이다. 특히 호주는 유럽 전역을 강타했던 필록세라 균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았기 때문에 100년이 넘은 쉬라즈 포도 넝쿨에서 맛과 향이 풍부하고 깊은 쉬라즈를 생산해내고 있다.


특별히 호주는 쉬라즈와 카버네 소비뇽을 블렌드한 적포도주와 샤도네와 세미용을 블렌드한 백포도주를 많이 생산해내고 있는데, 두가지 모두 매우 높은 품질의 와인이며 저렴한 가격에 제공되고 있어서 에브리데이 와인으로 적합하다.

호주 와인의 빈티지는 지역별로 차이가 많기 때문에 그다지 큰 의미가 없다. 1996년과 1998년이 전반적으로 우수했던 해로 꼽히기는 하지만, 1996년 이후부터 2001년까지 모든 해가 고르게 좋았던 것으로 기록된다.

<최선명 객원기자>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