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거짓말쟁이가 해방자?

2003-11-12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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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시는 지난주 이라크 민주화가 성공하면 다마스커스에서 테헤란까지 중동 전역에 자유가 확산될 것이라고 연설했다. 거짓말로 이라크를 공격해 자신이 좋아하는 벡텔, 핼리버튼과 같은 기업들에게 이라크 재건을 맡기고 꼭두각시 정권을 내세워 좌지우지하면서 이렇게 장광설을 늘어놓으려면 보통 뻔뻔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부시는 한 술 더 떠 자신이 블랙혹 헬기와 스마트 폭탄으로 무장한 현대판 모세임을 암시한다. 신성한 소명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부시는 자신의 비전을 새롭고 담대한 것으로 본다. 그의 전임자들은 현지 주민들의 이해보다는 미국의 이해를 앞세워 중동에 민주화를 주창하고 나섰다.

과거 중동의 독재자들은 대체로 미국의 용인아래 정권을 쥐고 있었다. 미국의 이해에 배치되지 않는 조건으로 말이다. 딕 체니 부통령이 과거 핼리버튼 회장으로 있을 때도 예외가 아니다. 미국은 민주화 걸음마 단계에 있는 나라의 국민들이 미국의 이익에 반하는 결정을 내릴 경우 이를 위험하다고 판단한다. 1953년 이란의 민주정권 붕괴에 중앙정보국이 한 일은 잘 알려졌다.


민주화는 외부에서 심는 게 아니다. 국민들이 스스로 만들어가야 하는 것이다. 과거 역대 정권이 그랬듯이 부시도 사실 이라크 민주화에는 관심이 없다. 하지만 부시가 부친으로부터의 충고를 들었더라면 지금과 같이 이라크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유엔을 도외시한 채 단독으로 이라크를 공격하면 적대적인 땅에서 점령군으로 남게 될 뿐이라는 부친의 회고록 내용은 아들 부시의 잘못된 행동으로 인해 현실로 다가오고 잇다. 민주화는 진실과 진정한 자결권 보장 없이 결코 실현되지 않는다. 민주주의에서 거짓말쟁이가 진정한 해방자의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보면 오산이다.

로버트 쉬어/LA타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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