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큰 불 앞에서의 의연함

2003-10-30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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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가주는 지금 불과의 전쟁을 치르고 있다. 샌디에고에서 LA, 벤추라까지 불타고 있다. 비가 불보다 먼저 왔더라면 좋았을 텐데 종종 그러하듯 비가 오지 않은 상태에서 산불이 났으니 그 결과는 더욱 끔찍하다. 초목이 잿더미로 변했으니 자연의 아름다움을 한동안 기대할 수 없음은 당연하다. 더 큰 일은 사람이 죽고, 집이 불탔으며 지금도 수많은 가옥이 위협받고 있는 것이다.

나는 복잡한 일상을 벗어 던지기 위해 세코야 국립공원에 들른다. 해발 7,200피트에 마련된 작은 마을이 내게는 안식처이다. 이곳에서 화재가 났을 때 모든 주민들이 대피했다. 전장 28마일의 구불구불한 2차선 도로를 타고 내려왔다. 소방관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진화에 여념이 없었지만 소중한 자연과 아름다운 마을, 캠핑장 등이 피해를 입었다.

특히 코요테, 곰, 산사자 등이 살고 있는 지역에까지 불이 옮겨 붙었다. 이처럼 커다란 재앙을 가져 온 화재의 원인은 어찌 보면 사소한 부주의에서 비롯된다. 오늘 아침 아들이 우리가 살고 있는 샌타바바라는 안전한지 물었다. 바다에 가까운 동네라 안전할 것이라고 말했지만 이러한 불은 누구든 위협할 수 있다.


1993년 토팽가-말리부 캐년 화재나 1990년 페인트 케이브 화재를 보게 되면 불길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번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 집은 1925년 샌타바바라 지진을 견뎌냈다. 1909년 경관 좋은 곳에 레드우드로 지은 집이다. 건축이나 역사적으로 보아 가치 있는 주택이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의 삶의 터전이란 점이다.

우리가 처음 이 집에 이사왔을 때 개수공사를 하라고 제의해 온 토건업자 가운데 한 명이 내 생전에 이 집이 분명 화재 피해를 볼 것이라고 했다. 나는 그의 조언에 감사했다. 그러나 실제 나는 다른 토건업자와 계약을 했다. 그러나 나는 해는 빛나고 바람은 불 것이며 집은 불에 타버릴 것이라는 토건업자의 ‘예언’을 결코 잊지 않았다. 오늘 아침 연기 자욱한 산을 바라본다. 그리고 언젠가 우리 집도 저렇게 타버릴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

코레기슨 보일/뉴욕타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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