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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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의 석유 정치

2003-10-18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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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전 오늘 쿠웨이트시티에 모인 석유상들은 세계 정치를 흔들고 70년대 에너지 위기를 가져온 결정을 내렸다. 이 결정은 오늘도 우리가 에너지 이슈를 어떻게 다루느냐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요즘 같이 유가가 높고 석유의 전략적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는 때는 더욱 그렇다.
73년 석유 금수는 아랍 석유무기화의 시작이었다. 기름 값을 2배로 올린 후 내려진 이 결정은 이스라엘에 무기를 공급한 미국을 응징하기 위한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이는 이스라엘과 아랍 사이의 분쟁에서 서방세계가 아랍 편을 들라는 압력이기도 했다.

이를 미리 내다본 사람은 거의 없지만 그럴 조짐은 일찍부터 있었다. 1967년 아랍-이스라엘 전쟁에서도 일부 아랍 산유국은 석유 금수조치를 취했다. 그렇지만 그 때는 세계에 추가 석유 생산 여력이 있었기 때문에 실패했다. 그러나 1973년에는 사정이 달랐다. 전 세계 석유 수요의 급증으로 시장은 공급 부족에 시달리고 있었고 더 이상 석유를 퍼올 데가 없었다. 이 때 내려진 금수조치는 세계적 패닉을 불러왔고 미국에서는 비싼 돈을 주고도 주유소에서 오래 기다려야 기름을 넣을 수 있었다. 이는 가격을 통제해 품귀현상을 유발시킨 정부 책임이 크다.

이로 인해 전 세계 질서가 바뀌고 아랍권은 페트로 달러를 배경으로 큰소리 칠 수 있게 됐다. 이 와중에 석유가는 4배로 치솟았으며 제2차 대전 후 호황은 끝나고 70년대는 대공황이래 최악의 경기를 경험했다. 석유 값이 배럴당 100달러를 넘을 것이란 얘기가 나온 것도 이 때다. 물론 그렇게 되지는 않았다. 석유파동이 난 지 10년도 안 돼 공급 과잉으로 석유 값은 폭락했고 이는 석유 수출에 의존하던 소련을 파탄시킨 원인의 하나가 됐다.

우리가 여기서 배울 점은 여러 가지다. 하나는 안정적인 가격의 에너지원 확보의 중요성이다. 또 하나는 시장원리가 결국은 수요와 공급을 조정한다는 점이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국가들은 그 당시보다 에너지를 아껴 써 지금은 GDP당 석유 소비율이 그 때 절반으로 줄었다. 70년대 그랬던 것처럼 석유는 지금도 전략적 상품이다. 석유파동 직후 닉슨 대통령은 에너지 자급자족을 이루겠다고 밝혔지만 미국의 해외 석유 의존도는 당시 30%에서 지금 60%로 오히려 높아졌다.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공급처를 다양화하고 기술 혁신을 통해 석유 에너지 의존도를 줄여나가는 것이다.

(대니얼 예긴/ 워싱턴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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