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투 벅 척 (Two-Buck Chuck)

2003-10-08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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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 벅 척’. 와인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거나, 와인에 전혀 관심이 없더라도 세상 돌아가는 얘기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귀에 익지 않아 생소할 뿐더러 와인과는 전혀 관계 없어보이는 이 단어를 지난 1년간 적어도 한번은 들어보았을 것이다. 뉴욕 타임스, 월 스트릿 저널, 워싱턴 포스트, LA타임스, AP 통신 등 미국내외 주요 언론에 지난 12개월 사이에 ‘투 벅 척’이란 단어가 한두번씩 거론되었기 때문이다.

투 벅 척은 ‘2달러짜리 드링크’라는 뜻인데, ‘트레이더 조’ 마켓에서만 판매하고 있는 ‘찰스 쇼(Charles Shaw)’ 와인을 일컫는 별칭이다. 그런데 찰스 쇼라는 이름은 와이너리 이름이 아니고 와인 레이블일 뿐이다. 찰스 쇼를 생산하는 곳은 브롱코(Bronco) 와인 컴퍼니이다. 브롱코 와인 컴퍼니는 프랜지아(Franzia)라는 회사 소속이고, 프랜지아는 또한 모건 데이빗, 글렌 엘렌 등을 소유하였으며 한 때 코카콜라 소유였던 더 와인그룹 주식회사 (The Wine Group, Inc.)가 현 소유주이다.

찰스 쇼는 카버네 소비뇽, 멜로, 샤도네, 소비뇽 블랑 네가지 와인을 출시하고 있는데, 네가지 모두 병당 1.99달러의 가격에 트레이더 조 마켓을 통해 판매하고 있으므로 ‘투 벅 척’이라 불리게 된 것이다. 그러나 전국 모든 트레이더 조 마켓에서 찰스 쇼 와인이 병당 2달러 정도의 가격에 판매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주마다 주류법이 다르고 세금과 유통관련 법규가 다르며, 운송비용이 다르기 때문에 어떤 주에서는 아예 판매를 못하는 곳도 있고, 가격도 제각각이다.


현재 찰스 쇼를 1.99달러에 판매하는 주는 캘리포니아주밖에 없고, 애리조나, 일리노이, 인디애나, 매사추세츠, 미시건, 네바다, 뉴저지, 오리건, 워싱턴주에서는 2.99달러, 그리고 오하이오주와 버지니아주에서는 3.29달러의 가격에 판매되고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750ml 의 와인 한병이 2~3달러의 가격에 판매될 수 있는 것일까? 가장 큰 이유로는 캘리포니아주가 90년대에 들어와서 포도경작지를 무리하게 늘리고 풍작에 풍작을 거듭하면서 포도가 넘쳐나게 되었기 때문이다. 두번째 이유는 같은 기간에 칠레, 호주, 뉴질랜드 등지에서 저가의 질좋은 와인이 쏟아져 들어옴으로써 소비자들이 싼 가격에 좋은 품질의 와인을 찾게되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세번째는 와인회사들이 감원과 기술의 발전 등을 통해 생산력을 높이고 지출을 감소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브롱코 컴퍼니가 찰스 쇼 1병을 만드는데 드는 비용은 25센트에 불과하다고 한다. 그리고 중간 상인을 거치지 않고 직접 트레이더 조에 납품함으로써 판매가를 더욱 낮출 수 있었다.

파격적으로 싼 가격에 힘입어 작년에 처음으로 선을 보인 찰스 쇼는 9월말 현재 총 600만 케이스 가까이 판매되었다고 한다. 브롱코사에 의하면 올해 안에 찰스 쇼 10억번째 병이 판매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도 그럴 것이 맥주도 아닌 와인을 한 케이스에 24달러에 살 수 있다니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에 소비자들이 꾸준히 찰스 쇼를 구입하고 있기 때문이다. 트레이더 조에서는 박스를 풀고 와인병을 진열해 놓지 못하고, 바닥에 케이스채 쌓아두고 판매하고 있다.

이같이 경이로운 판매 실적은 단지 가격 때문만은 아니다. 우선 용기와 레이블 디자인 등 겉모양이 값비싼 와인들과 별로 구분이 안 가게 멀쩡해 보인다. 더 큰 이유는 2달러가 아니라 병당 20달러라도 훌륭한 품질이라며 미디어에서 맛을 칭찬하고 있기 때문이고, 사실 와인에 그다지 익숙하지 않은 미국인들이 마시기에 부담스럽지 않을 정도로 부드러운 와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찰스 쇼는 그저 그런 품질의 와인이다. 개인적으로 샤도네가 그나마 좀 나은 편이라고 생각하는데, 과일향이 많지 않고 오크 나무 향이 너무 강해서 약간 쓰게 느껴질 때가 있다. 좋은 오크통에서 숙성시킨게 아니라 오크나무 조각을 과하게 스텐레스통 속에 넣어서 숙성시켰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멜로는 깊이가 느껴지지 않지만 먹기 편할 정도로 과일향도 나고 부드럽게 느껴진다. 가장 실망스러운 것은 카버네 소비뇽인데, 드라이한 와인임에도 불구하고 달착지근하게 느껴질 정도로 태닌을 전혀 느낄 수 없고, 강한 과일향을 맛볼 수 있으며, 그 모든 것이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와인으로 여겨졌다. 수개월전 참여했던 블라인드 테이스팅에서는 찰스 쇼의 카버네 소비뇽을 보졸레로 착각하는 사람도 있을 정도였다.

자본주의가 굳건하게 자리잡은 미국처럼 돈이 정직한 곳도 드물다. 싼 물건은 싼 이유가 있고 비싼 물건은 그만한 가치가 있다. 찰스 쇼 덕분에 와인을 전혀 안 마시던 미국인이 드라이한 와인을 많이 마시게 됐다는 점과 넘쳐나는 캘리포니아의 포도들을 소화할 수 있었다는 점은 긍정적으로 평가되지만, 또 한편으로 미국인들이 기대하는 와인의 맛이 찰스 쇼의 맛으로 정착되거나, 기대하는 와인 가격이 찰스 쇼의 가격이 될 수 없다는 점에서 우려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소위 ‘에브리데이 와인’이라고 부를만한, 매일 마실 수 있는 부담없고 질 좋은 와인이 여태껏 미국에는 존재하지 않았다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미국에서는 싸고 질 좋은 와인의 가격이 병당 6달러정도인데, 한병에 6달러짜리를 한달동안 매일 한병씩 마신다면 매달 180달러가 넘는다. 반면 한병에 2달러라면 매일 한병씩 마셔도 한달 평균 60달러선이므로 가격면에서 찰스 쇼는 미국인의 에브리데이 와인으로 정착하기에 손색이 없다. 대량으로 판매되며 가격이 싼 화이트 진판델 등의 다른 와인들과 달리 달지 않고 드라이한 와인이라는 점에서도 찰스 쇼는 공헌하는 바가 크다. 찰스 쇼의 성공적인 판매 전략을 다른 많은 와이너리들이 배워서 찰스 쇼의 단점을 보강하고 맛의 질을 높인 진정한 에브리데이 와인들이 앞으로 쏟아져 나오길 기대해본다.

<최선명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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