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민주주의도 지나치면 해악

2003-09-16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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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레이 데이비스의 팬이 아니다. 하지만 캘리포니아의 주지사 소환선거는 단순히 데이비스의 행운에 관련된 문제가 아니다. 민주주의 자체에 나쁜 징조이다. 무엇이든 즉각적으로 만족해야 직성이 풀리는 세태가 정치에까지 파고들었다. 데이비스가 이번에 소환되면 그러잖아도 용기 없는 정치인들이 점점 더 겁쟁이가 되고 말 것이다.

민주주의도 지나치면 문제가 된다. 캘리포니아가 지금 그런 상태이다. 왜 데이비스만 소환하는가? 경제가 무너진 데는 선출직 공무원들 모두가 어느 정도씩 책임이 있는 것 아닌가. 왜 주의회 전체를 소환하지 않는가?

솔직히 나는 샘이 난다. 2년반 전에 구입한 SUV가 영 내가 기대한 그대로가 아니다. 그 차를 물리고 새 차를 샀으면 좋겠는데 그렇게 되지가 않는다.


데이비스가 유권자들의 기대를 저버리기는 했지만 그것은 내 SUV가 나의 기대를 저버린 정도일 뿐이다. 데이비스가 범죄행위를 한 것도 아닌데 유권자들 스스로가 1년 전에 한 선택을 아무런 책임 없이 무효로 돌린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해리 트루먼은 물러날 때 인기가 바닥이었다. 트루먼 행정부가 2차대전 후 유럽 복구사업에 나서면서 인기가 뚝뚝 떨어졌다. 하지만 지금 되돌아보면 트루먼은 20세기 가장 위대한 대통령에 속한다. 노련한 정치가인 그가 공직자로서 대중적 인기에 대한 압박감을 모르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정치가가 유권자들의 변덕에 따라 이리저리 쫓아다닐 수는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캘리포니아 유권자들이 소신껏 일하는 주정부를 바란다면 소환이라는 우스꽝스런 절차를 당장 그만 두어야 한다. 데이비스를 소환하고 나면 정치에서 용기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 것이다. 그렇게 되면 터미네이터라도 어쩔 수가 없다.

마크 굿인/USA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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