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1 이후 첫 칼럼에서 나는 정치인들이 국민들의 적개심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 들 것이라고 지적했었다. 이 같은 지적에 대해 많은 독자들이 분개하는 반응을 보였다. 나라가 충격에 휩싸였는데 어떻게 그렇게 삐딱한 지적을 할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언론은 부시 행정부가 9.11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게 도를 지나쳤기 때문에 이에 대해 지적하는 것을 꺼리지 않았다. 워싱턴포스트가 어제 언급했듯이, 지난 6주간 부시 대통령은 이라크 전쟁과 북극 원유 채굴을 정당화하기 위해 9.11을 들먹였을 뿐 아니라 감세, 실업, 재정적자, 선거 자금법 등의 이슈에 대해서도 9.11을 언급했다.
조종사 복장을 한 채 비행기를 타고 영화배우처럼 항공모함에 내리는 모습을 연출했지만 더 이상 이러한 쇼는 통하지 않는다. 다른 일정이 바빠서인지 모르지만 부시 참모들은 뉴욕을 방문하는 일이 더 이상 정치적으로 안전하다고 여기지 않는 것 같다.
하지만 부시 행정부가 9.11을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비판자들을 비애국자라고 매도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판단하는 것은 잘못이다. 과거엔 9.11을 이용하려는 탐욕 때문이었지만 이제부터는 두려움 때문에서라도 9.11을 더 더욱 이용하려 들것이다. 과거엔 선택의 문제였다. 부시는 국민을 하나로 묶는데 성공했고 위기 시 항상 그렇듯이 국민들을 주변에 모이게 했다.
그러나 부시의 참모들은 탐욕스러웠다. 그들은 9.11을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 달성의 호기로 삼았다. 감세, 대기정화법 약화, 이라크 침공 등등이 그러하다. 모든 것이 잘못되었다. 재정적자는 5,000억달러를 상회하고 실업문제는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진정한 이라크 전쟁 승리는 요원하다. 부시의 인기는 9.11 이전보다도 못하거나 비슷한 수준이다.
지금과 같은 행정부 태도라면 에너지 정책, 환경 정책, 이라크 재건사업 계약, 정보 왜곡 등등 스캔들이 터져 나오는 것은 시간문제다.
결과는 미국 역사상 가장 추한 것이 될 것이다. 특히 대선과 맞물리면서 더러운 싸움이 전개될 것이다. 하워드 딘, 웨슬리 클라크 민주당 대선 후보들에 대한 경각심이 고조되면서, 도널드 럼스펠드 국방장관은 벌써부터 행정부를 비난하는 사람은 적을 지원하는 사람이라고 선수를 치고 있다.
부시 행정부가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고집을 부리면서 정치적 풍광은 한결 험악해질 것이다. 이라크 전쟁과 관련해서도 그렇다. 정부는 잘못을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이는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는 태도다. 지난 2년간 나빴다고 생각한다면 조금 더 기다릴 것을 권한다. 상황이 더욱 나빠지는 것을 목도하게 될 것이다.
폴 크루그먼/뉴욕타임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