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지붕 밑에 있는 여자(安)

2003-09-11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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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에 집 뒷마당 정원공사를 하였다. 배고픈 사슴이 뒷마당 뜰에 들어와서 꽃을 먹어버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철조망을 치기도 하고, 차고에서 뒤뜰로 올라갈 수 있도록 나무 계단도 만들고, 계단 위에 문도 만들어 달았다. 그때 공사를 하면서 나는 정원을 꾸미기 위해서 특이한 물건을 구하려고 수입품 상점에 자주 들렀다. 하루는 모형을 뜬 한문 문자들이 전시되어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장식용 한문 문자는 타이핑 종이 정도의 큰 글자였는데 밖에서 사용하여도 될 것 같았다.

나는 네다섯 가지 종류의 글자 중에서 ‘安’이라는 글자를 골랐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 글자의 뜻을 몰랐다. 글자 뒷면에 ‘평화, 평안, 안전’이라고 영어로 번역이 되어 있었다. 모양도 좋고 의미도 좋은 ‘安’이라는 글자를 사서 정원으로 들어오는 뒷문 가장자리에 매달았다. 아내도 문에 달린 사인이 정원과 잘 어울린다면서 좋아하였다.

그 후 몇 달이 지난 후 우리 집에 한국인 친구들이 방문하였다. 뒷마당을 구경한 한 친구가 사인에 대한 코멘트를 하면서 한문 글자의 의미를 나에게 설명하여 주었다. 그의 설명에 의하면 ‘安’이라는 글자는 두 글자가 합쳐진 것으로, 여자가 지붕 밑에 있는 의미가 있는 글이라 하였다.


지붕은 남자를 상징하는 것이고, 여자가 남편의 보호를 받고 있는 것이 ‘安’이라고 하였다. 우리 둘의 대화를 듣고 있던 다른 한인 친구가 설명을 덧붙였다. 지붕 밑에 있는 ‘女’라는 글자의 모양이 무릎을 끓고 있는 사람의 모습이라고 지적하면서 여자가 남자에게 순종할 때 집안이 평온하다고 하여 우리는 웃었다.

나는 뒷마당에서 나누었던 우리들의 대화를 오랫동안 잊고 있었는데, 최근 아프리카 여행 중에 기억이 났다. 이번 르완다 선교 세미나 주제는 ‘평화와 화해’였다. 르완다에는 과부들이 많다. 에이즈와 여러 가지 질병 때문에 과부가 되기도 하였지만 대부분의 과부들은 거의 100만이라는 사람들이 살해된 1994년에 일어났던 종족살해사건 때문에 생긴 과부들이다. 아프리카 한 모퉁이 작은 지구촌인 르완다에 가장 필요한 것은 평화와 화해이다.

우리 그룹의 한 멤버인 크리스틴은 영어가 서툴렀다. 그녀는 나의 아이디어에 공감하는 그녀의 마음을 표현할 때 “와” 하며 감탄사를 자주 사용하였다. 그녀에게 그 날 하였던 나의 설교가 어떠하였느냐고 물으면 그녀는 “와아아~” 하고 대답한다. 좋았다는 말이다. 아프리카 성가대원들의 노래가 어떠하였느냐고 물어보면 “와아~”하고 대답하였다. 좋았다는 뜻이다.

한번은 저녁식사가 끝난 후 아내와 나 그리고 크리스틴은 다음날 있을 세미나에 대하여 의논하였다. 우리는 아프리카 여인들에게 ‘평화와 화해’라는 세미나 주제의 의미를 어떻게 전달할까 하고 궁리하였다. 크리스틴은 ‘샬롬‘이라는 히브리어로 설명하면 어떻겠는가고 제의하였다. 아내는 한국말 ‘안녕’이라는 말이 있는데 영어 단어인 ‘peace’는 평안을 설명하기에 부족하다고 말하였다.

그 순간 나는 우리 집 뒷문에 달아 놓은 ‘安’이 떠올랐다. 나는 아내에게 ‘安’이라는 글자를 상기시켜 주었더니 얼굴빛이 환해졌다. 아내는 옆자리에 앉아있는 크리스틴에게 식탁 위에 손가락으로 글자를 쓰면서 한국말로 우리의 대화를 통역하였다. 크리스틴은 의미를 이해하는 순간 흥분한 목소리로 “와아아~~~~” 하면서 감탄하였다.

참 이상한 일이다. 한문이라고 딱 한 글자를 알고 있는데 우리들의 대화의 주제가 되어 평화와 화해라는 세미나 주제를 전달하는데 사용되었다. 다음날 아침 50명의 아프리카 여성들이 이 한문 글자를 배웠다. 지붕이라는 보호막 밑에 여자가 보호받고 있는 이미지와 ‘평화, 평안, 안전’이라는 의미가 세계 어느 곳에서나 비슷하기에, ‘安’이라는 글자가 어필이 되는 것 같다.

르완다 여성들이 나의 집 뒷문에 달아 놓은 한문 글자로 인하여 그들이 추구하고 있는 ‘평화와 화해’라는 의미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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