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북한 인권 유린 침묵해야만 하나

2003-08-28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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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인권이 새롭게 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다. 지난 주말 LA 출신 신동철 목사와 독일 의사이자 북한 인권 운동가인 노베르트 폴러첸 등이 주도해 풍선에 라디오를 실어 북한에 보내려던 계획이 한국 경찰의 방해로 좌절됐다.

폴러첸은 이어 대구에서 북한 인권을 항의하는 평화 시위를 벌이다 북한 ‘기자’와 한국 전경에 의해 폭행을 당했다. 뉴욕타임스와 월스트릿 저널 등 미 언론은 이를 주요 기사와 사설로 다뤄 그 반향이 커지고 있다.

북한에 라디오 보내기 운동을 지지하고 있는 에드 로이스 연방 하원의원은 “한국 경찰이 이를 저지한 데 충격을 받았다”며 “이번 사태에 대한 철저한 조사가 이뤄지기를 기대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민족 공조’를 내세워 북한 인권 운동을 짓밟는 한국 정부의 태도가 온당한 것인지 짚어본다.



폴러첸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e메일을 받는 사람의 하나다. 그의 메일 박스에는 하루 평균 1,400통의 증오 메일이 들어와 있다. 그 중에는 “폴러첸을 죽여라”부터 “한국을 떠나지 않으면 당신 가족이 몰살될 것”이라는 협박까지 다양한 내용이 포함돼 있다.

폴러첸을 향한 e 메일 캠페인은 한국의 운동권 학생을 중심으로 조직적으로 전개되고 있다. 북한 아동의 참상을 알리는 1인 시위 현장에 이들이 나타나 그의 얼굴에 침을 뱉고 달아나는 일이 한 두 번이 아니다.


폴러첸은 1999년부터 2000년까지 자원 봉사자로 북한에서 일하며 자기 살점을 떼어내 북한 주민의 생명을 건진 사람이다. 그 공으로 북한 최고 훈장까지 받았지만 북한 아동의 참상에 충격을 받고 인권 운동가로 변신, 결국 북한에서 추방됐다.

그가 한국에 남아 앞으로도 “생명이 있는 한 북한 어린이를 돕기 위해 싸울 것”이라는 스스로와의 약속을 지킨다면 그는 결국 테러를 당하거나 국외로 추방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슬픈 눈을 가진 폴러첸은 웬만한 일에는 잘 놀라지 않는 인물이다. 지난 번 LA 한인타운에 북한 인권과 종교 탄압에 관한 강연을 하러 왔을 때 수백 명이 들어갈 수 있는 강당에 불과 10여명의 한인이 모여 참석자들 얼굴이 화끈거렸는데도 “한인들을 상대로 얘기할 때만은 늘 그렇다”며 웃었었다.

그런 그도 지난 며칠 사이 벌어진 일에는 좀 놀랐던 모양이다. 그는 북한 ‘기자’와 한국 전경에 동시에 폭행 당한 거의 세계 유일의 인물이 됐다. 그는 “북한에 있을 때 인권 상황을 비판하다 요주의 인물로 찍혀 감시당했을 때도 공관원에게 맞아 본 적은 없다”며 “민주주의를 한다는 한국에서 전경에게 구타당할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평화 시위를 하다 맞은 것도 의외였지만 이와 관련된 국내 보도는 더욱 그를 놀라게 했다. 그가 북한 기자들과 “몸싸움”을 벌여 유니버시아드 대회 주최측의 체면을 손상케 한 “중죄”를 저질렀다는 기사는 그의 눈을 의심케 했다. 당시 그는 풍선을 띄우다 전경에 짓밟혀 목에는 기브스를 하고 목발을 짚고 있었다. 싸움을 할래야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이 사건은 어찌 보면 폴러첸의 말 맞다나 “사소한 일”이다. 일개 독일 의사가 시위를 하다 맞건 말건 신경 쓸 일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진정 우려되는 것은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한 한국 정부의 태도다. 노무현 정부 일각과 운동권, 소위 ‘진보적 지식인’을 자칭하는 사람들 사이에는 북한 인권을 거론하는 사람은 민족 공조와 화합을 깨는 ‘반역자’라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다.

“우리가 떠든다고 북한 인권이 개선될 것도 아닌데 김정일만 자극해서 얻는 것이 무엇인가”라는 것이 이들의 생각이다. 이를 거론하는 사람은 모두 ‘수구 반동’이고 ‘친일 친미’며 우리는 ‘민족 자주적 차원’에서 이를 봐야 한다는 것이다.

운동권과 ‘진보 단체’의 이같은 논리는 역설적이지만 그들이 끔찍이 싫어하는 박정희가 하던 말을 그대로 옮겨 놓았다. 박정희가 유신 궁정 쿠데타로 종신 집권의 길을 연 후 입버릇처럼 하던 얘기가 소위 ‘한국적 민주주의’였다.

자신의 철권 통치에 반대하는 반체제 인사들은 모두 ‘빨갱이’고 미국이 인권 침해를 이슈로 삼으면 ‘내정 간섭’이고 민주화를 외치면 ‘한국 실정을 모르는 소리’라고 맞섰다.

한국의 운동권과 ‘진보 세력’ 사이에는 북한의 인권에 관한 한 마피아를 능가하는 ‘침묵의 코드’가 깊은 뿌리를 박고 있다. 김정일이 세습 통치를 하건 마약 밀매를 하건 강제 수용소를 운영하건 일체 언급해서는 안 된다.

민족 공조와 자주는 중요하다. 그러나 주민의 인권을 짓밟는 것을 업으로 삼고 있는 김정일 집단은 정상적인 정치 조직이 아니다. 이들의 고통에 대해서는 입도 뻥긋 하지 못하면서 외치는 민족과 자주는 공허한 메아리며 북한 주민의 신음 위에 세워진 평화는 가짜 평화에 불과하다.

인권과 인간의 존엄은 개개인과 특정 집단이 논의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장난감이 아니라 모든 인간이 추구해야할 지존의 가치다.

인간이 국가와 집권자에게 충성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와 집권자가 인간의 존엄을 수호하기 위한 수단이라는 것은 인류가 수천 년 간 싸워 얻은 소중한 교훈이다.

인권을 부르짖는 외침은 짧게 보면 칼 앞에 무력하지만 길게 보면 반드시 승리한다. 인간은 모든 단점에도 불구하고 도덕적 동물이기 때문이다.

3,000년 전 유대와 사마리아의 광야에서 처음 ‘정의’와 ‘자비’와 ‘인간 생명의 소중함’을 외치던 선지자들은 돌팔매와 칼에 맞아 피를 흘리고 사라졌지만 그들의 목소리는 민주주의와 자유라는 이름으로 꽃피어 북한과 쿠바를 제외한 지구 전역을 뒤덮어 가고 있다.

“쓰레기 통 속에서 장미를 찾는 것이 낫다”던 한국 마저 이승만과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를 퇴장시키고 민주주의를 이룩했다.

지금은 꿈같은 얘기처럼 들리지만 언젠가는 북한 주민들도 자유와 풍요 속에서 인권을 이야기하는 날이 올 것이다. 그 때 그들이 인권 운동가를 탄압한 정권에 대해 어떤 심판을 내릴 것인지 한국 정부와 운동권들은 다시 한번 고쳐 생각해 보기를 권하고 싶다.

민 경 훈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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