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그녀
2003-08-22 (금) 12:00:00
거리를 지나다 무심코 쇼 윈도우에 비친 내 모습을 보았다. 흔히 하는 말로 ‘쇼 윈도우를 볼 때 남자는 진열된 물건을 보고 여자는 자신의 모습을 비춰본다’고들 한다. 그 말이 틀리지 않다는 생각에, 또 충동구매의 가능성을 줄이고자, 쇼핑을 할 때가 아니면 의식적으로 쇼 윈도우를 쳐다보는 행위를 삼가(?)는 편이었다.
아무런 준비도 없이 봐서 더욱 그랬겠지만 오늘 쇼 윈도우 한켠에 떠오른 내 모습과 마주친 순간 작은 충격이 뇌파를 흔들었다. 우두커니 무표정한 어정쩡함으로 서 있는 마흔, 쉰, 혹은 그보다 더 늙은 한 여자가 거기 있었던 것이다. 진열창 안의 화려하고 멋지게 디스플레이 된 의상들, 그 틈새를 비집고 살짝 들어온 파란 하늘 한 조각, 생기 넘치는 거리풍경이 떠다니는 사이에 서 있는 ‘그 여자’의 모습은 부조화 그 자체였다.
낯선 현기증 - 아주 잠깐 동안 나조차도 그 모습이 나라는 생각을 못 하고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러다 한 순간 나는 보았다. 그 모습 속에 되비친 어머니의 환영(幻影)을... 쇼 윈도우 속의 여자는 내 안에 감추어진 또 다른 나였다. 내 안의 그녀를 감지하고 그만 실소(失笑)를 금치 못했다.
‘난 절대 엄마처럼 살지 않을래!’란 말을 입버릇처럼 달고 다니던 때가 있었다. 자신의 몫은 최소한 줄이고 줄여가며 남편과 자식에게 다 내어주던 어머니께 미안해하고 감사하기보다는 그런 어머니와 함께 하기를 부끄러워했고, 걸핏하면 ‘엄마, 왜 그렇게 궁상을 떨어요?’ 라며 건방진 소리를 내뱉곤 했다.
스스로의 철없음을 깨닫기 시작한 것은 정작 어머니와 떨어져 살게 되면서부터였다. 내가 어머니를 비판하며 까불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 어머니의 품 안에 있었기 때문이었음을 안 순간 내 자신이 부끄러워 견딜 수 없었다. 가끔 남긴 음식이 버리기 아까워 한꺼번에 부어 무슨 맛인지도 모르고 먹을 때면 어머니 생각에 목이 멘다. 어머니와 살 때는 어머니가 무얼 드시는지 눈여겨 본 적이 없었는데...
화려한 쇼 윈도우에 비친 어머니의 모습은 여전히 늙고 초라했지만 나는 서둘러 그 자리를 피하지 않았다. 어떤 동질감이 내 속에 차올랐기 때문이다. 참으로 오랜만에, 연민이나 동정이 아닌 그리움으로, 존경과 감사함으로 내 안의 그녀를 오래 오래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