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개과천선한 가다피

2003-08-20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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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간의 외교협상 끝에 리비아는 마침내 270명의 로커비 테러 피해자 유가족들에게 27억달러를 지불하기로 합의했다. 이번 결말은 돈보다도 가다피가 국제 법규를 준수하기로 마음을 고쳐 먹었다는데 더 큰 의미가 있다. 부시 행정부는 승리를 선언하고 개과천선한 깡패를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받아들일 준비를 해야 한다.
1969년 집권한 이후 가다피는 국제 질서와 그 수호자인 미국을 경멸하는 여러 테러 단체와 반란군을 지원해 왔다. 로커비 폭파사건은 리비아가 오랫동안 관여해 온 테러공작의 일부이다. 그러나 10년에 걸친 경제 제재와 국제적 고립은 전투적 혁명가인 가다피까지도 테러를 정책수단으로 포기하게 만들었다. 이번 협상 타결 이전에도 그는 과거 가까이 했던 테러단체들과 거리를 둬 왔으며 팔레스타인 과격단체와 결별하고 테러 캠프를 폐쇄했다.
다른 테러그룹과는 달리 가다피는 9·11사태를 자신의 이미지를 바꾸는 기회로 활용했다. 그는 9·11테러를 확고히 규탄했으며 오사마 빈 라덴과 연계가 있는 리비아 회교 그룹에 대한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미국과의 관계를 돈독히 했다. 가다피의 말과 행동을 보면 이것이 단순한 술책이 아니라 그가 진심으로 변했음을 보여준다. 소련의 몰락과 아랍정치에 대한 환멸은 그로 하여금 새로운 노선을 걷게 만들었다. 2000년 9월 리비아 혁명을 기념하는 행사에서 그는 반제국주의 투쟁의 끝을 선언했을 뿐 아니라 과거 적들과의 협력을 주창했다. 가다피는 “지금은 경제와 소비, 시장과 투자의 시대다. 이것이 언어와 종교, 국적을 떠나 사람들을 한데 묶고 있다”고 말해 청중을 놀라게 했다.
워싱턴은 이런 그의 변심을 의심스런 눈길로 보아 왔다. 미국은 테러 이외에도 리비아의 대량살상 무기와 아프리카 내전 개입에 대한 우려를 갖고 있다. 그러나 리비아에는 낡은 소련 식 원자로가 한대 있을 뿐이며 그나마 국제 원자력기구의 감시를 받고 있다. 리비아의 핵 개발은 우려할 수준이 못 된다. 화학무기와 관련해서도 가다피는 화학무기에 관한 국제협약에 서명할 의사가 있음을 밝힌 바 있다.
가다피의 아프리카 문제 개입은 좀더 복잡한 문제다. 미국은 그의 이런 행동을 “지역 분쟁을 악화시키는 파괴적 행위”로 보고 있다. 그러나 가디피는 지역 분쟁을 중재하는 등 건설적 역할도 해왔다. 그는 콩고와 수단, 동아프리카 분쟁 해결 노력을 기울여왔으며 1999년 우간다와 콩고가 정전협정을 맺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가다피의 정책은 아프리카합중국 건설을 제창하는 등 돈키호테적인 면도 있으나 과거 파괴를 일삼던 것에서 협력을 모색하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하고 있다. 가디피의 아프리카 정책은 이념이 아니라 경제적 기회주의 위주다.
미국은 더 이상 과거 정책을 고집할 것이 아니라 리비아의 정책을 바꾸는데 성공했음을 선언하고 이 나라를 테러 지원국 명단에서 빼야 할 것이다. 그렇게 하는 것이 다른 나라들로 하여금 자신들도 행동을 바꾸면 깡패국가 명단에서 빠질 수 있다는 희망을 주는 길이다.
레이 타케이/ 워싱턴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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