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북한의 트로이 목마

2003-08-16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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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미국과의 불가침 조약론이 미국 정책 입안가들 사이에 지지를 얻고 있다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그런 조약은 한반도에서의 미군 철수는 물론 장차 일본의 핵 개발을 불러올 뿐이다.
북한은 자기네 안보가 부시 대통령의 ‘악의 축’ 발언과 후세인 축출 등 일련의 발언과 행동으로 위협받고 있다고 생각한다. 북한 지도자들은 부시가 평양 정권 교체를 목적으로 삼고 있다고 믿고 있다. 따라서 김정일의 입장으로 보면 핵무기가 있어야 미국의 선제 공격을 억제할 수 있다는 것이다. 김정일은 핵 포기 대가로 미국과의 불가침 조약 체결을 원하고 있다.
그러나 북한은 회담 형식을 둘러싼 지연 전술로 핵 개발에 필요한 시간을 벌어왔다. 평양이 동의한 6자 회담은 별로 기대할 것이 없다. 평양은 마음만 먹으면 온갖 구실로 회담을 지연시키고 핵 개발을 계속할 수 있다.
북한이 주요 회담 전제 조건으로 내건 것이 미국과의 불가침 조약이다. 북한은 과거에도 핵 포기와 사찰 대가로 이를 요구해 왔다. 그러나 이는 나중에 미국이 함정에 빠질 수 있는 위험한 제의다. 워싱턴은 북한에 핵 공격을 가할 의사가 없음을 밝히고 조약 체결을 거부해야 한다.
핵 포기를 전제로 한 불가침 조약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지극히 위험하다. 첫째 어떻게 북한 핵 시설을 다 뒤져 핵이 없다고 단언할 수 있단 말인가.
둘째 일단 불가침 조약이 체결되면 북한은 주한 미군 철수를 주장할 것이다. 양쪽 모두 전쟁을 하지 않기로 한 이상 주한 미군이 있을 필요가 없다는 주장을 펼 것이다. 한국민들도 이런 북한의 주장을 지지할 것이다.
셋째 일단 미군이 한반도에서 떠나면 북한은 남한의 ‘형제’들에게 미국 간섭 없는 한반도 통일을 주창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오키나와를 비롯한 일부 일본 주민들은 오키나와의 미군 기지도 폐쇄하거나 축소해야 한다고 나올 것이다.
마지막으로 미-북한간의 불가침 조약은 미 일 방위 조약과 저촉될 수 있다. 북한이 핵을 포기하더라도 생화학 무기는 여전히 가지고 있으며 이를 일본 공격에 쓸 수 있다. 미-북한간 불가침 조약이 체결되면 그럴 경우 일본 내 미군은 상호 방위 조약에 따라 일본을 도울 수 없다. 이 가능성에 대비해 일본은 자체 핵무기를 개발하지 않을 수 없다.
불가침 조약 대신 미국은 일본이나 한국과 공조해 평양 정권을 외교적으로 인정하겠다고 제안해야 한다. 북한과의 다자 회담을 통해 북한 정권은 사실상 인정받았다. 이를 공식화한다면 주변 나라들은 북한에 공관을 설치, 북한 사정을 좀더 정확히 파악할 수 있을 것이고 북한과의 의사 소통도 순조로워질 것이다.
그 사이 미국과 일본은 북한을 겨냥한 비군사적 경제 제재를 통해 시간 벌기가 평양에 도움이 안 된다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 여기에는 대량 살상 무기나 관련 테크놀로지, 마약과 위조지폐 수출 등이 포함될 수 있다. 이는 공해상에서 북한 선박의 관찰과 나포를 통해 이룰 수 있다.
지난 달 일본은 불법 테크놀로지 수입과 간첩 활동을 해 온 것으로 알려진 북한 연락선의 일본 출입을 잠정 봉쇄한 바 있다. 이는 올바른 방향으로의 첫 걸음이라 본다.
니시하라 마사시/일본 국방 아카데미 교장/ 워싱턴 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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