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엉터리 소환투표

2003-08-13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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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에서도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유행이라는 것이 있다. 그래도 백만장자인 아리아나 허핑턴이 민중의 대표를 자처하며 주지사 후보로 출마한 것은 좀 심하다는 생각이 든다. 워싱턴에서 보수파 바람을 타고 뉴트 깅그리치식 정치 살롱을 만들려 하던 것이 불과 8년 전이다. 그녀는 1995년 11월27일 ‘왜 뉴트가 대통령에 출마해야 하나’란 글을 썼다.
로널드 레이건과 닮았다는 평을 받고 있는 아놀드 슈워제네거는 ‘투데이’ 쇼에 출연, 미국에서 유일한 가주 가족 유급휴가법을 지지하느냐는 질문을 받고 “나는 가족을 중시한다. 아동 문제는 중요하며 우리가 제일 먼저 돈을 써야 할 분야가 그것이다. 아동이야말로 우리가 갖고 있는 가장 소중한 자원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주의 미래를 생각해야 한다. 아동이 가장 중요하며 우리는 가정을 도와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굿모닝 아메리카’ 쇼에서 “가주 예산 적자를 메우기 위해 세금을 올릴 용의가 있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세금을 올리는 것도 예산을 깎는 것도 반대하며 가주로 비즈니스를 유치하는 일을 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비즈니스가 가주를 떠나는 이유 중 하나는 가족 휴급휴가법 같은 정부의 규제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슈워제네거를 레이건과 비교하는 것은 ‘정치 철학이라고는 미소밖에 없는 인물’이라는 레이건에 대한 혹평을 그럴 듯하게 만들어주는 것이 된다. 그러나 그는 10여년간 정치 소신을 피력하다 1966년 주지사에 출마한 ‘확신 정치인’ 레이건과는 전혀 다른 인물이다.
그는 오는 10월7일 주민투표에 부쳐질 인종 프라이버시 발의안에 대한 입장을 표명해야 한다. 주정부가 주민을 인종적으로 분류하는 것을 금지하는 이 안은 인종에 따라 전리품을 분배하는 것을 어렵게 만들 것이다. 그는 이것이 아동들에게 도움이 된다고 말할 것인가 말 것인가.
데이비스 주지사는 제리 브라운의 비서실장으로 정치에 입문했다. 그런 식으로 시작해 이를 평생 직장으로 여기는 게 요즘 미국 추세다. 현 연방의원 ¼이 보좌관 출신이다. 성공한 기업인이 될 정도로 똑똑한 슈워제네거는 주지사도 해낼 수 있을 정도로 똑똑하다. 그러나 카터와 닉슨도 똑똑했다.
진짜 보수적인 가주민이라면 소환투표에 ‘노’를 하고 수많은 후보 중 정말 보수적인 인물에 표를 던져야 한다. 그러나 수주 후 데이비스가 쫓겨날 것이 확실시되면 민주당 실세들은 그를 사임시키고 부스타만테 부지사로 하여금 그 뒤를 잇게 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소환투표는 맥이 빠지고 민주당은 다시 예산적자와 씨름하게 될 것이다. 엉터리 같은 소환투표를 주도한 공화당이나 민주당 모두 망신당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합당한 결과라 본다.
조지 윌/ 워싱턴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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