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머잖아 막 내릴 ‘파이 잔치’

2003-07-29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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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나라인가. 집권 여당 당수(대표)가 검은 돈을 챙기고도 국가의 법 집행관인 검찰 조사를 거부하고 있는 이 나라가 제대로 된 나라인가. 정권의 시녀라는 불명예를 씻어보겠다고 딴에 팔을 걷어붙인 검찰을 향해 대통령 보좌관이란 자가 “저 사람들(검찰) 간덩이가 부었구먼”하고 가로막아서는 이 나라가 온전한 나라인가. 생수사업을 한다면서 검은 돈을 어두컴컴한 지하 차고에서 받아 챙긴 대통령의 최측근이란 자가 대로를 활보하며 ‘개혁신당’을 만들겠노라고 기고만장해 하는 이 나라는 도대체 어떤 나라인가.

가장 악랄한 독재정권에 5억달러라는 큰돈을 넘겨 핵무기를 만들게 해 놓은 전임 대통령(DJ)이란 사람이 “그래서 우리가 그동안 편안하게 산 것 아니냐”며 되래 언성을 높이고 있는 이 나라가 법도 있는 나라인가. 그 내막(대북 송금)을 좀 더 자세히 알아보자고 국민 대표기관인 국회가 두 번째 특별검사 임명을 결의했지만 대통령이란 사람이 “북한 김정일 조사가 어렵다”는 핑계를 대고 거부한 이 나라의 진짜 주인은 누구란 말인가.

국민 호주머니를 털어 눈 딱 감고 북한에 퍼다준 보상으로 노벨 평화상을 움켜쥔 DJ의 불법 탈법을 눈감아주는 게 후임 대통령의 할 짓이며, 이 잘못된 권한행사를 그저 그런가 보다 하고 넘기는 이 나라 국민의 수준은 뭔가. 집권에 대한 신세와 호남 민심을 걱정해 그런 결정을 내렸다는 게 명약관화하거늘, 민주와 자유와 민족자존과 반외세(반미)라는 온갖 듣기 좋은 구호를 외치며 거리를 휘젓고 다니는 진보좌파들과 시민단체의 꿀 먹은 벙어리 짓은 또 뭔가.


눈만 뜨면 무슨 스캔들, 무슨 게이트 하는 권력형 비리가 꼬리를 물고 일어나는 이 나라가 법치국가인가. 땅도 없는 유령회사를 차려 놓고 매머드 샤핑몰을 짓는다며 순박한 계약자들로부터 수천억원을 거둔 뒤 목하 집권여당이 된 민주당 선거자금으로 그 일부를 갖다 바친 ‘굿모닝시티 사기사건’은 빙산의 일각일 뿐, 정말 독한 집권자가 나와 칼을 댄다면 줄줄이 고구마 넝쿨처럼 끌려 나올게 분명한 ‘부패 공화국’의 미래는 뻔하지 않겠는가.

사기꾼의 검은 돈이 대선 자금으로 흘렀다는 증거가 나오자 “여야 정치인 모두 고해성사하자”며 딴에 진지한 표정을 짓고 자신의 대선 자금 내막을 쥐꼬리만큼만 보이고는 “당신들도 밝히시오”하고 야당을 코너에 몬 노무현씨와 민주당의 저 졸렬한 처신은 또 무어란 말인가.

야당인들 떳떳한 게 있겠냐만, 자기네 것은 맛만 보이고 상대편 것은 죄다 까발리라는 것은 무슨 경우인가. 대통령에 당선된 뒤 응원군인 ‘노사모 회원들’ 앞에서 “나와 여러분들이 대형사고를 쳤다”고 말한 그로선 차라리 이번에야말로 “초대형 사고”를 칠만했던 게 아닌가. “국민 여러분, 오늘 나는 내 자신이 저지른 죄를 고백합니다. 돼지저금통만 가지고 선거를 치르지 않았습니다. 기업가들로부터도 돈을 거두었습니다. 그 내역을 낱낱이 공개합니다. 만약 국민들께서 책임을 물으시면 책임을 지겠습니다.

혹여 자비를 베푸신다면 한번 큰 일을 해내겠습니다. 다름 아니라 제 임기동안 검은 정치자금을 절대로 주고받지 못하게 차단하고 만약 불법이 발견되면 누구든 법대로 처벌하겠습니다. 만약 나와 주변에 불법한 일이 일어난다면 그 날로 대통령자리를 내놓는 초대형 사고를 치겠습니다”--이렇게 라도 말해야 하는 게 아닌가.

지금 이 나라는 부정과 부패와 한탕주의로 고름이 뼈까지 차들었다. 나라 곳곳이 썩는 냄새로 진동한다. 돈을 쌓아 놓으면 고약한 썩는 냄새가 코를 찌른다고 한다. 실제로 그런 증언이 나온 적이 있다. DJ의 큰아들이 사과상자에 가득찬 검은 돈을 잠시 아파트에 숨겼다가 으슥한 밤에 아버지 집(동교동)으로 옮겼다고 검찰에서 증언한 이가 있었는데, 그의 말에 따르면 “그 아파트에서 고기 썩는 것 같은 지독한 냄새가 났다”는 것이다. 하루 살기 힘든 서민들이야 코가 문드러지더라도 그 냄새 한번 맡고 죽었으면 원이 없겠다고 허탈해 하지 않았던가.

‘어디 정치인 주변뿐이랴. 코를 킁킁하면 언제 어디서나 맡을 수 있는 게 돈 썩는 냄새다. 세금 거둬 가는 세무서, 인허가 내 주는 관공서, 수출입 물건 조사하는 관세청과 공항 세관--도장 쾅쾅 찍어야 뭔가 되는 모든 국가 관청 주변에선 썩는 냄새가 진동한다. 검은 돈 거래를 수사하는 검찰과 경찰, 진급과 보직에 뒷돈 거래가 활발한 군인사회, 심지어 교사들도 ‘촌지봉투’를 챙기고 교육감 선거 때마다 뒷돈을 갈라 먹는 교육자들--이 모든 공조직들이 ‘먹이사슬’을 만들어 공생하고 있는 나라가 한국이다.

나라를 위해 일한다는 정치인 치고 ‘역사의 교훈’을 말하지 않는 이 없다. 한데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막상 자기들은 역사의 교훈을 무덤 속 유물 정도로 치부한다. ‘역사 좋아하네. 대권부터 잡고 국회의원 당선되고 장관 한 자리해서 나와 내 가족이 떵떵거리며 사는 게 중하지 웬 역사냐’고 코웃음치는 게 이 나라 정치인들이다.

정말로 이 나라의 미래는 암울하다. 혹자는 이렇게 반론을 펼지 모른다. “거, 무슨 넋두리요? 만달러 소득에 천만대가 넘는 자동차가 하이웨이를 씽씽 달리고 쌀이 남아돌아 막걸리 해 마시고 더운물 팡팡 나오는 아파트에 사는 우리사회가 뭐 어떻다는 것이며 미래가 어둡다니 무슨 달밤에 개 짖는 소리요?”

하지만 나는 개 짖는 소리를 또 낼 수밖에 없다. “그대들이 갈라 먹고 있는 그 파이조각이 민주화를 떠든 그대들이 만든 게 아니오. 그나마도 거덜날 날이 머지 않았소”라고.


안영모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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