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 ‘공금 감독위’구성 절실하다
2003-07-24 (목)
문제 터지면 ‘잠수’ ‘책임전가’ 구태 여전
다수에 대한 소수의 기만행위 묵과 안돼
고의성 드러나면 관계자 법적 조치 불사
한반도라는 척박한 환경에서 자라 온 우리는 ‘내 것’에 대해 남다른 애착을 갖고 있는 반면 ‘남의 것’에 대해선 무신경, 무감각의 ‘기분파’이다. 내 돈이 새어나가면 눈을 부라리지만 남의 돈이라면 “좋은 게 좋은 것”이라며 너그러워진다. 성금을 모아 폼 나는 이런 저런 사업을 하겠다며 깃발을 치켜세우던 단체들의 ‘현주소‘는 이들의 공금 불감증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이민 100주년 기념사업회의 한 간부가 최근 자리에서 물러났다. 예산관리를 담당했던 이 간부가 기금을 자신만 볼 수 있는 구좌에 넣자 다른 관계자들이 이에 반발한 데서 사단이 일었다고 한다. 기념사업회 내부에서는 “왜 구좌내역을 공개하지 않느냐”는 소리가 높아졌고, 이 간부는 “나를 믿지 못한다는 말이냐”고 받아쳐 내홍이 심해짐에 따라 자리를 내놓았다는 후문이다.
아무리 청렴결백해도 공적인 일을 할 때는 빈틈을 보여선 안 된다. 한푼도 흩뜨리지 않을 자신이 있다고 하지만 공연히 사서 의심받을 이유는 없다. 딜러에 갓 들어온 새 차라 해도 시운전을 해보려는 고객에 성을 내거나 물리칠 수 없는 법이다. 공금이 부당하게 잘려 나가지 않았으면 그나마 다행이다. 할 일이 태산인 기념사업회로선 옷매무새를 단정히 할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성금을 거둬놓고 제 할 일을 못한다면 공분을 산다. 10여년 전 우정의 종각에서 한인사회 지도급 인자들을 불러모아 기공식까지 가졌던 한국전 참전기념비 건립 사업이 바로 이 꼴이다. 전체 모금액이 100만달러에 달했고 한인들도 십시일반으로 10만달러를 모았는데 기념비는 눈을 여러 번 씻고 보아도 보이지 않는다.
기념비 건립은 참전용사들의 넋을 기리자는 것이지 성금 기부자들에게 상처를 주자는 게 아닌데 상황은 반대로 나타났다.
기념비 설계, 사무실 임대료, 직원 봉급, 환경조사비 등으로 모은 돈을 다 써놓고도 다시 200만 달러를 모금하겠다는 ‘야심찬’ 청사진을 제시하고 있으니 한심하고 뻔뻔하다. 정작 기념비를 세워야 직성이 풀린다면 주최측 관계자들이 손수 비지땀을 흘리며 돌을 깎아 우정의 종각 한 귀퉁이에 만들 수는 있다. 하지만 만일 모금 캠페인이 다시 전개되면 도시락을 싸들고 다니면서 막아야 할 일이다.
공금을 규모 없이 써 정작 지불해야 할 곳에 지불하지 못해 원성을 사는 일도 볼썽사나운 광경이다. 통일이라는 그럴싸한 주제로, 게다가 독일에서 나보란 듯 학술포럼을 치른 국제 한민족재단은 이름 값을 못해 빈축을 사고 있다. 행사를 준비하면서 분수에 맞게 ‘살림’을 짜야 하는데 앞뒤를 제대로 가리지 못해 결국 막판에 정산이 되지 않아 피해자가 나오고 재단 자체는 물론 통일포럼의 취지도 훼손됐다. “행사를 측면 지원해준 쪽에서 행사 후 약정금액을 받지 못해 독일 주재 한국대사관에 진정을 하는 촌극이 벌어졌다”는 한 포럼 참석자의 지적은 재단측이 귀담아 들어야 할 말이다.
그리고 어디에서 얼마를 지원 받아 얼마를 썼고 얼마가 남았다든지 아니면 얼마가 부족하다든지, 도대체 공개를 하지 않으니 모두들 깜깜하다. 돈 관리에 허점이 있었더라도 바로 잡을 기회가 없다. 기본적인 수입, 지출 내역을 공개하는 게 뭐 그리 힘든 일이라서 그러는지 알 수 없다. 그러니 ‘꿍꿍이 속’이란 의심을 받아 마땅하다. 억울하다고 해도 결자해지의 자세로 나서기 전엔 어쩔 수 없다.
아무튼 재단 관계자들은 포럼으로 야기된 문제를 통일을 논하는 사람들답게 통 크게 처리해야 한다.
모은 공금이 사업이나 행사비용을 처리하지 못해 쩔쩔매는 것보다는 조금이라도 남는 것이 좋다. 설령 사업이나 행사가 미흡했다는 관전평을 듣더라도 분에 넘치는 ‘호사’로 허리가 휘고 여기저기서 꾸어서 메워야 하는 처지보다는 백배 낫다. 그러나 공금이 남은 채 오래도록 잠겨 있어도 곤란하다. 고이면 부패하기 때문이다. 폭동성금 잔여분 약 20만달러가 용처를 찾지 못하고 잠자고 있다고 한다.
사용할 곳을 찾지 못하는 것인지 아예 찾지 않는 것인지 커뮤니티 차원에서 규명해야 할 일이다.
조금 과장하면 폭동성금 내지 않은 사람보다 낸 사람이 많다고 할 정도로 호응을 얻었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기억에서 점차 멀어지고 있다. 그러나 성금 잔여분은 반드시 제대로 쓰여야 한다. 더 이상 특정 구좌에 묶여 있어서는 안 된다. 성금을 보관하고 있는 한미구호기금재단의 해명이 시급하다.
공금 불감증은 여기에서 머물지 않는다. 한인들이 값진 정성을 모아서 마련한 한국노인회 건물을 회장이 임의대로 매각하려 들고, 한인사회가 아우성을 치는데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있다.
삐걱대는 한미박물관은 한민족의 문화유산을 보전하자는 숭고한 뜻에 동참한 한인들에게 뒤통수를 내리친 격이다. 모금할 땐 미사여구로 사업계획을 포장하지만 차질이 빚어지거나 ‘앙꼬 없는 찐빵’이 란 판단이 서면 발빼기에 바 쁘다.
한동안 ‘관심도 1위’를 유지했던 한인타운 준경찰서 건립 사업도 추진한 지 10년이 다 돼 가는 데 가시적인 결과 없이 성금 50만달러만 사무실 운영비 등으로 흐지부지 없어지고 말았다.
“시간이 지나면 잠잠해 질 것”이라는 ‘마이 웨이’는 도도하게까지 여겨진다.
공금 불감증은 자발적 치유가 어렵다. 충고와 조언이 약효를 발휘하지 않는다면 고강도 조치가 따라야 한다. 성금 기부자를 우롱해도 기부자들이 법적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바로잡을 수 없다. 그러므로 비영리단체를 감독할 수 있는 ‘커뮤니티의 눈’이 있어야 한다.
깨끗하고 지조 있는 인사, 법률 및 재정분야에 전문성을 갖춘 인사들로 민간차원의 가칭 ‘공금 감독위원회’를 구성하는 것이다. 감독위는 무보수에, 고정 경비가 들어가는 사무실 없이 사안이 생길 때만 만나서 단체들의 공금 사용내역을 검토하고 이를 커뮤니티에 공개하며 필요할 땐 기부자들을 대신해 소송도 제기한다.
한인회가 최근 불거진 한국노인회 건물매각 문제를 사회 이슈화하고 이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려는 자세는 바람직하다. 차제에 공금 감독위원회 구성 문제도 사회 이슈화했으면 한다. 말로 되풀이해도 듣지 않으면 대안은 하나밖에 없다.
박 봉 현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