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대통령의 거짓말

2003-07-15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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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부시대통령은 이라크가 아프리카로부터 우라늄을 구입하려 한다는 주장을 했다.

그 주장이 거짓 정보를 근거로 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민주당 측이 분개하고 있다. 테리 맥컬리프 민주당 의장은 “대통령이 국정 연설을 통해 고의적으로 국민을 오도한 것은 근세사상 처음 있는 일일 것이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것은 전혀 드문 일이 아니다. 대통령의 의도적 정보 왜곡은 민주당, 공화당 할 것 없이 모두 써 먹어온 미국의 전통이다. 20세기 역대 대통령들은 해외에서 행한, 혹은 행하지 않은 행동들을 정당화하기 위해 의혹의 여지가 다분한 정보를 이용하곤 했다.


대통령의 정보 왜곡은 20세기 초 미국이 제국으로 부상할 무렵부터 시작되었다. 제국의 건축가, 데오도어 루즈벨트는 당시 미국의 유일한 정보기관이었던 해군정보부에 의존해 위협을 과장했다.

그는 전함을 계속 구축하면서 이를 정당화하기 위해 베를린 주재 미해군 무관이 전하는 소문을 들먹였다. 도고 일본 제독이 중국 금이 든 가방들을 잔뜩 싣고 다니면서 독일에서 무기를 구입하고 있다는 소문이었다.

루즈벨트는 또 외국의 해군군함 구축 프로그램에 관한 정보를 해군 정보부에 요구, 과장된 추정치를 얻어냈다.

루즈벨트의 국내 정적이었던 우드로 윌슨도 정보 과장의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미국이 1차 대전에 개입할 즈음 윌슨은 실제로 알려진 것 이상으로 독일의 위협을 과장했다.

독일이 미국 구석구석에 스파이들을 심어놓고 미국민들의 여론을 자기편에 유리하게 오염시키려 하고 있으며 그래서 많은 국민들이 오염되었다는 식이었다.

2차 세계대전이 터진 후 영국은 미국이 겁을 먹고 전쟁에 끼여들도록 만들기 위해 프랭클린 루즈벨트에게 거짓 정보 자료를 제시했다. 나치가 라틴 아메리카까지 먹으려고 모의를 하고 있는 것 같다는 내용이었다.

국무부와 연방 중앙수사국은 당시 영국의 주장이 너무 과장돼 있다고 루즈벨트에게 경고를 했다.


그럼에도 불구, 루즈벨트는 1941년 9월11일, 히틀러가 신세계에 발판을 마련하기 위해 라틴 아메리카 국가들에 침투하고 있다는 라디오 연설을 했다. 그리고 10월27일 외교정책과 관련 한 그의 가장 중요한 연설에서 루즈벨트는 한 지도를 내세워 연설을 했다. 영국정보부가 위조했을 것으로 보이는 지도로 가짜 같다는 경고를 이미 받은 바 있는 지도였다.

그럼에도 불구 루즈벨트는 히틀러 정부가 만든 비밀 지도를 내가 가지고 있는 데 그 지도를 보면 나치가 라틴 아메리카 뿐 아니라 미국까지 넘보고 있다는 게 분명하다고 연설했다.

린든 존슨은 1964년 8월4일 정보 조작에 뛰어 들었다. 급격히 고조되는 베트남 전을 정당화 하기 위해 그는 TV에 나와 통킹만에서 미군함이 공격을 받았다는 슬픈 소식을 전했다.

이틀전 그 지역에서 소규모 접전이 있기는 했지만 8월4일 사건은 전혀 확인이 안된 상태였다.

정말로 공격이 있었는지 여부가 불분명하므로 조사가 필요하다는 보고를 함장이 합참의장에게 이미 했음에도 불구, 존슨은 미국민들에게 그 메시지를 전달했다.

리처드 닉슨과 그의 국무장관 헨리 키신저도 필요에 따라 정보를 과장하기도 하고 축소하기도 했다. 닉슨행정부 초기 키신저는 탄도 요격 미사일 시스템에 대한 의회의 승인을 얻기 위해 소련의 미사일 위협을 과장했다.
그러나 1972년 전략무기 감축 협정에 대한 승인을 얻을 필요가 생기자 키신저는 소련의 위협을 축소했다.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와 조지 H.W. 부시 행정부에서도 정보는 대단히 정치적으로 이용되었다. 이런 역대 대통령들의 전적을 볼 때 부시가 정보를 왜곡하지 않았다면 그게 오히려 놀랄 일이 될 것이다.

제이콥 헤일브런
LA타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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