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숙희 기자의주방일기
2003-07-02 (수) 12:00:00
나는 원래 음식 만들 때 실수를 잘 안 하는 편인데 며칠전 작은 실수가 있었다. 그것도 우리 식구용 음식이 아닌 대외발표용 음식에서 그런 일이 발생하여 낭패감이 심했고 자존심도 무지하게 상했다.
불행중 다행인 것은 그 사실을 아무도 눈치채지 못 했다는 것이다. 눈치 채기는커녕 맛있다고 칭찬들을 했는데, 그 칭찬은 거의 그들의 ‘편견’에 의한 것이었음을 나는 알고 있다. 한국일보 푸드 에디터가 직접 해온 것이니 분명히 레서피가 특별한, 그러므로 당연히 맛있는 샐러드라고 사람들은 생각했던 것 같다.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매주 목요일 저녁 공원에 모여서 뛰는 몇 가정이 바비큐 파티를 하기로 했다. 아이들 방학도 했고 날씨도 더워졌으니 한 주만 뛰기를 쉬고, 먹고 놀자는 합의가 이루어진 것이다. 팟럭 파티를 하기로 하고 내가 맡은 것이 샐러드였다.
‘이 기회에 샐러드의 진수를 보여주자’고 착한 마음을 먹은 것이 왜 그런 결과로 나타났는지 모르겠다. 착한 마음보다 잘난 체 하려는 생각이 더 컸을까?
아무튼 샐러드의 성패는 야채와 드레싱의 신선도에 있으므로 수요일 밤 마켓에 나가 재료를 모두 사다 냉장고에 넣어두었다. 그리고 목요일 저녁 퇴근하기가 무섭게 집에 돌아가 야채를 씻고 다듬고 자르고, 드레싱을 만들었다.
내가 사용한 야채는 토마토, 오이, 숙주, 지카마, 로메인 상추, 양상추, 아굴라, 그리고 유러피언 스프링 믹스 한 봉지였다. 지카마(jicama)를 혹시 잘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설명하자면 멕시컨 무라고 할 수 있는 야채로 겉보기는 딱딱하고 넙적한 감자 같이 생겼지만 껍질을 벗기면 흰 무와 비슷한 속이 나온다. 이것을 얇게 썰어 샐러드에 넣으면 사각사각하게 씹히면서 달단한 맛이 독특한 향과 함께 샐러드의 맛을 살리는 역할을 한다.
야채를 모두 준비한 다음 드레싱을 만들었다. 올리브 오일, 발사믹 식초, 금방 간 마늘과 후추, 머스타드, 꿀, 레몬즙을 넣고 한껏 흔들어 잘 믹스했다. 이탤리언 드레싱과 허니머스타드의 맛을 접합시키려고 나름대로 생각해서 만든 것이다.
야채와 드레싱을 따로 담아 공원으로 들고 간 나는 사람들이 “어머, 맛있겠다” 환호하는 가운데 자랑스럽게 야채들과 드레싱을 섞어 먹음직스럽게 담아놓았다. 그리고 그제서야 맛이 어떤가 본다고 오이 한 점을 집어먹었는데, 아! 이게 웬일, 무엇인가 잘 못 되었음이 담박 느껴졌다.
새콤·달콤·매콤·살콤 해야할 맛이 그저 밍밍했던 것이다. 갑자기 불안해져 다시 상추와 토마토 한 점씩을 집어먹어 보았다. 역시 내가 계산했던 맛이 나질 않고 있었다.
무엇이 잘 못 된 것일까? 당황하며 머리속으로 가만히 더듬어보니 빠진 것이 있었다. 소금이었다. 너무 여러 재료를 늘어놓고 부엌에서 난리를 치다가 그만 가장 기본적인 재료를 빠뜨린 것이었다. 우째 이런 일이…
이 일로 나는 말로만 듣던 소금의 중요성을 알게 되었다. 소금은 단지 짠맛을 내는 것만이 아니라 다른 맛을 살리는 역할도 하는 것이다. 소금이 빠지니까 식초와 레몬의 새콤한 맛도, 겨자의 매콤한 맛도, 꿀의 달콤한 맛도, 그리고 마늘과 후추의 향조차 충분히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더러 빛과 소금 같은 존재가 되라고 하나보다. 나 자신도 필요한 존재로 살아야 하지만 이웃도 살려주고 도와주는 역할을 하라고...
그러한 저간의 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은 “샐러드가 정말 맛있네요” 하면서 고맙게도 열심히 먹어주었다. 나는 끝까지 진실을 밝히지 않았다. 맛있게들 먹었는데 괜히 김 뺄 필요가 없고, 또한 그날의 주인공은 샐러드가 아닌 바비큐였으므로 크게 상관할 일도 못되었기 때문이다.
속은 무척 상했지만 오랜만에 날씨가 풀린 여름밤, 어른 아이 해서 한 40명이 갈비와 돼지갈비, 치킨, 소시지, 감자를 구워 즐겁게 먹고 놀았다.
바야흐로 바비큐 시즌. 내일 모레 독립기념일은 미전국이 고기 굽는 냄새와 연기로 뒤덮이는 날이다. 부디 잊으신 양념 없이 맛있게들 구워드시기 바란다.